오너 눈치 보며 자사 실적 챙기기도 벅차…중견 건설인에 떠넘겨 대외 협상력 저하 우려

대형 건설사 최고 경영자(CEO)들이 대외업무의 일환인 건설 관련 협회활동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임기제 경영자인 만큼 책임을 맡고 있는 건설사의 실적개선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울러 정치적 이슈와 연관돼 협회활동을 포기하는 건설사도 있다. 대형 건설사 CEO들이 협회 활동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업계의 정치권 등으로 상대로한 대외 협상력이 저하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한기 한국주택협회 회장/ 사진= 대림산업
2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김한기 전 대림산업 대표이사가 한국주택협회(주택협회) 회장 직무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주택협회는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이사회를 개최해 김 회장이 차기 정기총회까지 협회장 직무를 수행하도록 의결했다. 김 회장이 지난 10일 대림산업 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주택협회장직에서도 물러날 것이란 예측이 완전히 빚나간 셈이다.

주택협회는 주택사업을 영위하는 80여개 대형 건설사의 모임이다. 대형 건설사의 의견조율 및 업계의 애로사항을 정부 및 정치권에 건의하는 교섭단체 역할을 수행한다. 

김 회장이 재차 회장직을 역임하게 된 데는 타 건설사 CEO들의 회장직 기피 현상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를 대변하는 단체인 만큼 건설사 CEO가 협회장직을 맡는다. 다만 대형 건설사의 경우 대다수가 오너 기업에 속한다. 이에 대표이사가 자사 실적개선에 신경 쓰는 일만으로도 버거워 협회장직을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협회장에 취임해도 무보수로 일하는 만큼 메리트가 더욱 떨어진다. 제9대, 10대 회장직을 맡았던 박창민 전 대우건설 사장의 경우도 타 건설사 CEO의 고사로 임기를 두 번이나 역임한 전례가 있다.

이같이 대형 건설사 CEO들이 협회장직을 고사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종합건설사를 대표하는 대한건설협회의 경우 전임 회장은 물론 현 유주현 회장(신한건설 대표이사) 모두 중견 건설사 CEO다. 대형 건설사 CEO가 수년째 회장직에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해외사업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해외시찰 등을 CEO가 수행하는 등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 와중에 협회장직까지 맡는다는 것은 (대형 건설사) CEO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로 협회활동에 미온적인 건설사도 있다. 최근 삼성물산은 대형 건설사 CEO 모임인 한국건설경영협회(한건협)를 탈퇴했다. 한건협은 25개 대형 건설사 CEO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비법정단체다. 삼성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이후 대기업을 대변하는 관련 단체 활동에 선을 긋는 것과 같은 궤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협회란 결국 정부에 대한 건설업계의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만든 단체다. 대형 건설사의 참여가 부진하면 그만큼 협회의 협상력도 악화된다”며 “이는 더 나아가 건설업계와 정치권의 의사소통이 저하되는 등의 악영향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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