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에서 긴축으로 선회하려는 미국…외국자본 이탈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는 지난 614일 금년 들어 두 번째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올해부터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을 매입하며 잔뜩 불어난 대차대조표 자산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여 보유채권을 팔기보다는 만기가 끝난 채권의 재투자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FRB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낮춰 더 이상의 금리인하가 여의치 않자 경기부양을 위해 3차례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으로 국채와 MBS 등을 매입하며 돈을 풀었다. 이러한 부양책의 결과로서 경제에 온기가 돌자 통화정책 정상화 차원에서 양적완화 철폐, 금리 인상, 양적 긴축의 순으로 풀었던 돈의 회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과거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신봉했고 20세기초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주장한 화폐수량설에 따르면, 화폐의 수량(M)에 유통속도(V)를 곱한 것은 물가(P)에 실물거래량(T)을 곱한 것과 같다(MV=PT). 이 중에서 화폐유통속도는 거래관습, 제도 등에 의존하므로 대체로 일정하기 때문에 물가수준은 화폐량에 비례한다고 보았다. 이 이론은 화폐유통속도가 결코 일정하지 않다는 케인즈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도 유력하게 인용되고 있다.

 

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통화정책을 보면서 화폐유통속도 논쟁을 떠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금융시장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암세포처럼 증식되는 각종 파생상품들로 유동성이 넘쳤다. 투자은행(IB)들의 무분별한 레버리지와 고위험자산의 유동화는 화폐유통속도를 높이며 글로벌 유동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금융은 거품을 일으키며 부동산 등 실물부문의 가격을 밀어 올렸다.

 

그러다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패닉상태로 내몰렸다. 자산부실화가 심한 금융기관들은 극심한 신용경색으로 파산하거나 공적자금으로 연명했다. 금융시스템은 망가졌고 화폐유통속도는 급락했다. 중앙은행이 푼 돈은 금융시스템을 통해 실물부문으로 흘러가야 함에도 운용에 불안을 느낀 은행들이 오히려 중앙은행으로 역류시키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통화당국은 갖가지 수단으로 금융시스템을 복원시켜 화폐유통속도를 높이려고 애썼으나 여의치 않자 돈을 직접 살포하며 화폐량(M)을 늘리는 정책을 썼다. 그것이 바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이다. 중앙은행이 국채, MBS 등 채권을 매입하며 돈을 실물부문에 직접 살포한 것이다. 당시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라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일도 서슴치 않겠다고 했다. 오죽하면 그를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렀겠나.

 

3차례 양적완화로 풀려진 돈의 규모는 32천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미달러화 유동성이 넘쳐 났고 늘어난 유동성은 수익을 좇아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다가 이제 미국의 통화당국이 양적완화를 폐지하고 금리를 인상하며 양적 긴축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신흥국들은 그동안 들어온 유동성이 다시 빠져 나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 통화당국이 돈을 풀 때 언젠가 화폐유통속도가 되살아나면 승수효과 때문에 금융시장에 엄청난 유동성 팽창을 가져와 또 다른 거품을 일으킬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 통화당국은 다시 긴축정책을 쓸 것이고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신흥국부터 돈이 말라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봤다. 지금 그런 우려가 미국 통화당국의 움직임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외국자본 의존도가 큰 우리로서는 긴장되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원화가 국제화되지 못해 손에 쥔 고유동성 외화자산만이 유일한 안전장치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지금 국제금융시장 동향이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살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최근 수출이 늘고 60개월 이상 흑자를 보이고 있으나 곳간의 외화가 위기시 안전한 버팀목이 되도록 외환건전성을 세밀히 점검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를 지켜준 각종 외환건전성 지표와 그 이후 도입된 외환건전성 3종세트에 안주하지 말고 외국과의 통화스왑계약을 지속적으로 늘려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거듭된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으로 달러화 유동성을 흡수할 경우 외국자본이 이탈하지 않도록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더욱 보강하고 국가신용등급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혹여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가시화되거나 환율불안이 닥칠 경우에 대비하여 수출업체들이 경쟁력에 타격을 받지 않도록 각종 컨틴전시 플랜을 재점검하여 경제안보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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