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집값 때문에 결혼도 미뤄 … 서울 전세 재계약 시 평균 6000만원 올려

얼마 전 한 지인이 요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청년들은 집 때문에 결혼하기가 아주 힘들다고 큰 걱정을 늘어 놓았다. 서울에선 2억 원으로 전세조차 얻지 못한다고 했다. 또 가까스로 전세를 얻어봤자 매년 전세금 오르는 걸 맞춰주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은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했다. 같은 공기업을 다니더라도 서울에선 집에 치여 살지만, 먼 지방으로 내려가면 서울서 전세 얻을 돈으로 집 사고 외제차까지 굴릴 수 있다고 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집값 강세

그처럼 청년들에게 부담을 주는 집값이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급하게 뛴다는 소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강남과 강동구 아파트가 각각 0.3%와 0.29% 오르는 등 그 동안 국내 부동산값 상승을 주도하던 주요 도시지역 주택매매가격이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 집값은 그 동안도 상승폭이 컸는데, 다시 강한 상승세를 이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이후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서울이 3.4%이고 부산이 4%로 전국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는 2016년 이후 5.2%나 올랐다. 전국 평균이 1.5% 상승한 것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올랐다. 부산 해운대구는 이보다 상승 폭이 커서 같은 기간 7%나 급등했고, 동래구도 5.2%나 뛰었다.
 

문제는 주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집값상승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전국을 투기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금을 끌어올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의 허리를 휘게 한다.
 

2016년 이후 서울 전세금은 평균 3.4% 올랐고, 마포구는 7.5%나 뛰었다. 부산 전세금도 평균 3.8%나 뛰었다. 월급쟁이가 열심히 모아봤자 전세금 올라가는 것을 채우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년 만에 전세 재계약을 하는데 평균적으로 2800만원, 서울에선 6000만원을 올려줘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내어 셋집 얻은 청년들은 여기에 이자부담까지 져야 하니 살아가기 힘든 게 당연하다.

◇집값 때문에 결혼 미루는 청년 속출

이것이 지금 청년들의 결혼을 막고 있고 아이 낳는 걸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특목고를 주범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지만, 사실 교육비 부담은 집값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문제의 핵심인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하고 변죽만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 가격이 뛰자 일부 시민들은 자칫 참여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참여정부 5년 동안 주택매매가격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를 합한 22.9%보다 높은 24%나 뛰었다. 말로는 부동산 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부동산 버블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삼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의와 식은 한국에선 거의 해결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품 옷은 아닐지언정 취위 피할 옷 못 구하는 사람이 없고, 쌀도 남아돌고 있으니 먹을거리가 없어 굶어죽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택만큼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전국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훨씬 넘었는데도 집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전세 때문에 고생하는 가구 또한 적지 않다.
 

이는 주택을 삶의 필수 요소로 대하기보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도구,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삼은 데서 비롯됐다.
역대 정부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손쉬운 건설에 의존하려 했고, 그러다보니 업자들의 농간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공기업의 지방이전을 추진하면서도 과밀한 수도권에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해 인구를 집중시키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펴기도 했다. 부동산 가격이 국가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데도 분양가를 자율화해 개발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기도 했다.
 

금융기관들 먹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임대주택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전세제도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잇달아 내기도 했다. 높은 전세금을 지탱하는 뒷돈을 대줌으로써 집주인들 도와주는 전세금 대출이나, 사실상 담보대출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주택연금의 공과도 이제는 따져봐야 한다.

◇성장률 희생하더라도 집값 잡아야

정부는 집값과 전세금을 잡기 위해선 성장률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집값 끌어올리는 건설사들을 규제하고 강남3구와 해운대가 문제라면 그곳을 도려낼 수도 있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도로 철도망을 다시 계획하는 등으로 아이들이 집값 비싼 수도권을 떠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줘야 한다. 공기업만 지방으로 이전시킬 게 아니라, 대기업이나 일류대학과 종합병원까지 이전시켜서라도 아이들을 집값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더 이상 집장사들이 아이들의 인생을 흔들게 해선 안 된다. 아이들은 집값의 노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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