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담배회사 조선말 관영기업 ‘순화국(順和局)’

KT&G 신탄진 공장 / 사진=KT&G

“순화국(順和局)은 완전한 관립(官立)기구로 와아문주사 김가진이 주임이 되고 우리나라(일본)에 다녀간 김용원이 발기한 서양식 엽권연초를 제조하는 연초제소다. 이제부터 세상 사람의 기호에 적합하도록 주의한다면 충분히 외국인의 관심도 끌 수 있고 후일 무역품이 될 수 있다.”
'통상휘편' 인천항지부 일부 발췌, 일본 외무성

KT&G(사장 백복인)가 지난달 31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창업 기원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기존 대한제국 ‘궁내부 내장원 삼정과(1899)’에서 이보다 빠른 조선 후기 ‘순화국(188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기관은 당시 개화파들이 주도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영 담배회사로, 무역에도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최근 학계 연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KT&G는 지금까지 1899년 세워진 대한제국 황실의 ‘삼정과(蔘政課)’를 창업기원으로 삼아왔다. 1980년 전매청이 사사 편찬 때 고종실록과 조선총독부 자료에 근거해 삼정과를 전매의 기원으로 명시한 데 따른 것이다. 삼정과는 고종 황제가 궁내부 내장원에 설치해 담배 전매를 맡긴 기관이다.

하지만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 삼정과가 만들어진 해보다 16년 앞선 1883년 개화파 주도로 최초의 담배제조소인 ‘순화국’이 설립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조선에 대한 통상관계 문서인 ‘통상휘편(通商彙編)’에 “순화국은 완전한 관립기구로 서양식 엽권연초(담배)를 제조한다 … 기호에 맞게 주의한다면 충분히 외국인의 관심도 끌 수 있다. 후일 무역품이 될 수 있다”는 등을 근거로 최초 관영 연초기업인 ‘순화국’이 정부기관 → 공기업 → 민간기업의 역사를 지닌 민영 담배회사 KT&G의 기원으로 보기에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통상휘편 외에 일본 관보와 도쿄요코하마마이니치신문 등에도 순화국 관련 유사 기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순화국은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 활동과도 연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 책임자였던 김가진이 독립대동단을 조직해 활동하다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한 움직임도 있었다.

백복인 KT&G 사장은 이날 창립 기념사를 통해 “회사의 모태는 ‘순화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출발했지만, 공기업으로의 전환과 민영화를 거쳐 현재 글로벌 초우량기업 KT&G가 됐다”며 “앞으로 해외 수출과 경영혁신, 사회적 책임 수행을 강화해 제2의 도약기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국내 토종 담배회사인 KT&G는 지난 1988년 국내 담배시장 개방을 계기로 해외 수출을 개시한 이래 2015년 처음으로 해외판매량이 내수를 넘어섰다. 해외시장 개척 28년 만이다. 그 사이 해외 현지공장과 법인 설립, 현지기업 인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국내 판매량 452억 개비보다 많은 487억 개비를 세계 50여 개국에 판매하며 ‘수출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국내 담배시장의 경우, 시장 개방 당시 안팎으로 우려가 컸지만 KT&G는 외국계 다국적 담배회사들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시장점유율을 약 60%로 1위를 굳건히 지켜냈다.

또한, KT&G는 담배사업 외에도 제약·바이오(영진약품), 화장품(코스모코스), 부동산 등 수익성과 성장성을 갖춘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주력했다. 1999년 독립법인으로 분리한 KGC인삼공사는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넘어섰다. 2002년 민영화 당시와 견주어 지난해 매출액 4조 5,032억 원으로 100% 이상 증가했고, 현재 시가총액은 13조 원대를 기록하며 4배 이상 올랐다.

KT&G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순화국(1883)을 새로운 창업기원으로 하는 사사(社史) 개편을 하게 됐다”며 “이는 KT&G의 역사성과 자주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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