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신입PD 사망,격무·박봉 판치는 문화계 치부 드러내…화려함 이면의 가혹한 노동환경 개선을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문화를 만든다면서 목숨을 위협한다. 세상은 이것을 열정으로 포장한다.” 

 

영화평론가 박우성 씨가 18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故이한빛(28) CJ E&M PD 사망을 염두에 두고 꺼낸 표현이다. CJ그룹은 오랫동안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해왔다.

‘열정노동’은 화려한 문화의 장막 뒤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한 시나리오 작가와 인디뮤지션의 죽음도 여전히 빈번히 회자된다. 저작권 약탈 등 불공정 논란도 문화계 구석에 똬리를 튼 대표적인 적폐로 꼽힌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는 동안 과노동이 일상화됐다며 구조적 병폐를 강조하고 나섰다.

18일 오후 온라인 공간은 ‘혼술남녀’로 뜨거웠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이날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PD 사망에 사측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드라마 제작의 열악한 환경, 회사의 과도한 업무부여, 언어폭력과 괴롭힘 등을 이유로 꼽아서다.

앞서 고인의 동생인 이한솔 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씨에 따르면 혼술남녀 제작팀은 작품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계약직 다수를 정리해고 했다. 이후 ‘정리’ 업무를 맡게 된 고인은 계속된 밤샘 촬영에 쉬는 날도 없이 출근했다.

이씨는 “한류 열풍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수출액에서 드라마는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면서 “찬란한 영광 속에, 다수의 비정규직 그리고 정규직을 향한 착취가 용인되며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CJ E&M은 밤늦게 공식입장을 내고 “유명을 달리한 이한빛 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한다”며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다.

열정노동은 어느새 화려한 문화의 장막 뒤에 쌓인 격무와 야근, 박봉을 정당화하는 키워드가 됐다. 상황과 맥락은 다르지만 문화계에서 열정노동 탓에 벌어진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경기도 안양 석수동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32세였다. 지병과 굶주림이 주된 사망원인으로 풀이됐다. 최씨는 2006년 단편 ‘격정 소나타’를 통해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유망 예술가였다.

앞서 2010년 11월에는 노래 ‘절룩거리네’로 유명한 뮤지션 달빛요정만루홈런 이진원 씨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출혈이다. 이씨가 숨진 후 불공정한 음원 수익 배분 구조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농단 정국을 뜨겁게 달군 블랙리스트 논란 역시 근본적으로 보면 열정노동과 맞물려 있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은 “블랙리스트 사업이 종북 등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단체에 국가 보조금이 지원돼선 안 된다는 국정기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계 인사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재판에서 얘기해 놀랐다. 예술창작자에게 성장의 과실이 ‘낙수효과’처럼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보조금은 중요한 공적지원체계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의미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처한 현실도 함께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저작권 약탈 등 불공정 관행도 주기적으로 문화계를 달구는 논란거리다. 방송음악 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 사태가 대표적이다. 피해 작곡가들이 공개한 저작물 계약서에 따르면 “창작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독점적으로 영구히 갑이 관리하며, 저작인격권의 행사는 영구히 갑이 행사하며 관리한다”고 적혀있다. 피해 작곡가들을 지원하는 변호인단은 이를 두고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 위반이라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9월 기자와 인터뷰했던 소설가 손아람 씨는 “예술가에게 자기 이름이나 작업은 미래의 자산이다. 그걸 지렛대 삼아 다음 작업을 얻고 성장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없어지니 재생산할 여지도 사라졌다”고 이 사태의 의미를 규정했었다.(관련기사: [문화산업 직격인터뷰]② ‘문화갑질’에 맞선 소설가 손아람)

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문화계 적폐는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정부의 검열이나 행정 상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현재 시장에서도 불공정거래와 계약직 중심 고용형태, 야근이 일상화한 노동환경 등 쌓인 문제가 넘친다”며 “그간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는 동안 과노동의 문제가 일상화됐다. 한쪽에서는 권력의 논리, 다른 한쪽에서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도구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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