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는 욕설은 후보의 ‘새빨간’ 거짓만큼 심각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 골프 얘기는 현명치 않습니다. 대중화했다지만 아직은 돈푼 꽤나 있는 자들의 놀이로 치부하는 측도 적잖으니까요. 때문에 잘해봤자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예서 골프를 언급할까 합니다. 한국 여성 골퍼에 관한, 그것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우승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니 양해가 있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지난 3일(미국시간) 끝난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프레이션에서 유소연 선수가 우승했습니다. 4라운드 연장전에서 미국의 렉시 톰슨을 꺽었지요. 지난 2년8개월 동안 침묵하다가 우승컵을 받아든 유 선수의 감회와 기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한국민들로서는 올 시즌 치러진 7개 대회 중 태극 낭자가 5개를 휩쓴 게 마음에 걸린다면 걸립니다. ‘상 차려 놓으니 코리안이 몽땅 챙겨간다’고 자칫 미움 받지 않을까하는 ‘즐거운 비명’이지요. 앞서의 투어대회에서 장하나·양희영·박인비·이미림 선수가 우승했음은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이 경기와 관련, 미국에서도 (우리와 종류가 다른) 여진이 이어집니다. 미국 선수가 우승컵을 놓친 이유때문이지요. 톰슨 선수는 전날 경기 도중의 ‘과실’이 드러나 ‘4 벌타’를 먹는 바람에 연장전을 치른 끝에 패했습니다. 골프 문외한들도 4점을 까먹는 게 치명적임은 대략 짐작하실 겁니다. 

 

아무튼 미국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등 유력 언론들은 타이거 우즈 등 선수·전문가 등 입을 빌어 “페널티 부여는 부당” “정당한 조치”등으로 나뉘어 시끄럽습니다. 부당 쪽은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선 곤란” “이중 처벌은 과다”등을, 정당 쪽은 “규칙에 충실해야” 등을 각기 역설합니다. 


상세 경기 내용은 각설하고 만약 ‘유 선수가 벌타 먹는 바람에 우승을 놓쳤다’면 어찌 됐을 지를 상상해 봅니다. 혹은 이 ‘사건’이 한국 골프장에서 일어났다면, 한국이 주최자였다면 무슨 사태가 벌어졌을까도 떠올려 봅니다. 규정 준수 등 원칙에 관한 논쟁보다 ‘차별’ ‘편파’ ‘불공정’을 듬뿍 담은 욕설이 난무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 지나칠까요? 쏟아지는 비난 공세에 LPGA 컴퓨터가 다운됐을 지도 모르지요. 

 

‘미국 아이들은 논쟁도 멋들어지게 하는 데 우리는 안 그렇단 말이지’라며 지레 시비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양키 예찬’도, 자기 비하도 아닙니다. 왜곡된, 거친 표현들이 실시간 검색어라는 이름으로 ‘주제어’가 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본말이 전도되며 ‘건설적 논쟁’은 발도 못 붙이게 되기 일쑤였기에 해보는 말입니다. 


예전엔 ‘못난’ 사람들이 재래식 화장실 벽에 아주 고약한 낙서를 휘갈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공적 공간에 화장실의 그것 보다 더한, 옮기기조차 민망한 내용들도 넘쳐 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x년’, 국민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를 ‘x새끼’운운하는 것은 예사입니다. 

 

이젠 일상화돼 무감각해진 ‘좌빨’이니 ‘부역’이니 하는 단어의 속뜻을 한 번쯤 헤아려 보십시오. 말 그대로라면 상대는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니까 서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벚꽃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각 정파의 후보가 정해졌습니다. 지지율 1위 문재인 후보를 꺾기 위한 비문(非文) 혹은 반문(反文)연대 절충작업이 진행 중이니 5월9일 며칠 전에야 최종 대진표가 확정되겠지요. 대통령 탄핵·파면, 그 과정에서의 ‘촛불-태극기’대결 등으로 가열된 변종선거는 이래저래 극단의 과열 양상을 띨 게 분명합니다. 

 

문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안철수 ‘연합’후보와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승패가 달라진다는 내일신문 4월초 여론조사가 발표되는 등 아무도 방심 못할 처지니까 검증 등을 명분으로 난타전이 최고조에 이를 게 빤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단순한 ‘외래 변수’가 아니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에 혼란이 수습되기는커녕 누란(累卵)의 위기상황이 이어질 소지가 농후하단 말입니다. 걷잡기 힘든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각오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래서는 물론 안 됩니다. 싸움에 지면 모든 게 허사라는 말은 틀리지 않으니 총력전을 펴는 게 당연합니다. 와중에 암·독수(暗 毒手) 동원도 마다 않을 게 충분히 예상됩니다. 

 

각 캠프에 비장의 무기들이 발사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기야 점잖은 다 빼던 미국의 지난 대선에도 마타도어·가짜뉴스가 범람했고 일단 당락이 판가름 나니까 모든 게 끝이었지요. 그러하니 이조시대 선비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게 공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노력만은 기울여야 합니다. 나라 장래 뿐 아니라 새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말이지요. 

 

‘최소한의 노력’이란 상대 후보·지지자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는 안기지 않는 겁니다. 마지막 자존심인 아킬레스까지 건드려 감정의 앙금을 남기는, 가슴에 대못 박는 언행은 자기 급소를 향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후보 본인도 ‘새빨간’ 거짓말만은 삼가 해야죠 (새빨간에 작은 따옴표로 강조한 것은 싸움판에서, 더구나 거짓말이 특기이자 본질인 정치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해할 만한 거짓말 종류도 따로 얘길 않겠습니다. 상식이니까요). 


한가하게 골프 얘기 꺼내놓고 웬 사설이 그리 기냐고 나무랄지 모릅니다만 실은 ‘욕 수준’이 그만큼 심각한 탓입니다. 우리의, 군중 속에 들면 엄청나게 격정적이고 무서울 정도로 쏠리는 경향을 의식해서입니다. 우리의 열정이 발전 동력이지만 빗나가면 분열과 대립의 원천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절감하는바 그대로니까요. 


각 후보 진영의 자제를 간청합니다. 지지자, 팬들이 하는 행위라 나 몰라라 하는 후보는 정말 곤란합니다. 하물며 뒤로 은근히 부추기는 짓거리는 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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