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봄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방풀나물

1. 방풍나물
바닷가 근처에서 찬바람을 맞고 자란다. 바람을 잔뜩 맞으며 자라지만 반대로 ‘바람을 막아주는(防風)’ 효능을 지닌다.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호흡기 질환에 탁월하다. 맛은 전혀 다르지만 고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쉽게 친해지기 힘들지만 적응하고 나면 어느 음식에든 한 움큼씩 집어넣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통통한 줄기 부분을 씹으면 한약재같이 쌉싸래한 맛이 살짝 머물다 가신다. 한가로운 주말이면 시장에 가서 줄기가 통통하니 쓴맛이 적은 방풍나물을 한 바구니 사온다. 냄비에 물, 간장, 식초, 설탕을 입맛대로 넣고 달달 끓인다. 그대로 방풍나물을 넣어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다.

 

 

 

은달래

2. 은달래
이른 봄이면 시장을 뒤져 은달래를 찾는다. 장바닥에 깔린 달래를 아무렇게나 한 움큼 쥐어 올리면 열에 아홉은 일반 재배종이다. 알뿌리에서 은은한 은빛이 도는 달래가 진짜 은달래. 물론 재배종도 맛있다. 하지만 자연에서만 나는 은달래는 향이 더 진하고 보드라우며 달다. 청포묵처럼 늘어지는 봄날에는 달래의 수염뿌리를 부지런히 손질한다. 뿌리의 양만큼 꿀을 준비하고 양동이에 소주를 콸콸 부어 그 안에 뿌리, 꿀을 담아 휘휘 젓는다. 그리고 두세 달을 기다린다. 여름이면 향긋한 달래주가 완성된다. 달래에는 불면증을 이겨내는 성분이 있다. 취침 전 작은 작에 따라 마시면 금세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다래순

3. 다래순
나물을 담은 바구니가 좌르르 진열된 좌판에서 다래순은 단연 눈에 띈다. 한 바구니에 5천원쯤 되는 높은 몸값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독 다래순만 촉촉하게 물기를 간직한 모습이라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장 상인은 다래순을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좌판에 올린다. 막 채취한 다래순은 독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된장, 들기름, 참깨로 양념하여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뚝딱 무쳐 밥반찬으로 먹는다. 반찬을 만들고 남은 다래순은 채반에 척척 올려 서늘한 곳에서 말린다. 겨울까지 기다려 묵나물로 먹을 생각을 하면 절로 손이 커진다.

 

 

 

봄동

4. 봄동
잎만 똑 떼어놓고 보면 김장 배추나 봄동이나 거기서 거기다. 7분간 삶은 파스타 면과 7분 10초간 삶은 파스타 면의 식감을 구별할 수 있는 미식가가 아닌 이상 맛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순 없다. 하지만 노지에서 겨울을 나며 자란 생명력 때문일까? 봄동을 한입 베어 물면 묘한 생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김장 배추보다 수분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봄이 찾아올 때마다 봄동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지만 밑동을 쳐내고 잎사귀를 아무렇게나 찢어 겉절이로 만들어 먹을 때가 항상 제일 좋았다. 충분히 달큰하니 설탕을 넣을 필요도 없다. 완도, 신안에서 난 것이라면 쌈장만 달랑 찍어 먹어도 입이 즐겁다.

 

 

비단멍게

5. 비단멍게
수온이 높아지는 봄철이면 시장 좌판에 비단멍게가 우르르 깔리기 시작한다. 참멍게는 껍질에 뿔 모양 돌기가 솟아 있지만 비단멍게 껍질은 홍옥처럼 색이 곱다. 바늘로 찌르면 톡 터질 듯 탐스럽게 부푼 것으로 고른다. 비단멍게는 강원도 고성에서 자생한 것을 최고로 친다. 생크림 케이크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칼질해야 멍게가 품은 물이 사방으로 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첫술은 무조건 초장 없이. 해산물임에도 상큼한 레몬 향이 입안에서 탁 치고 들어온다. 손질한 껍질은 버리지 않는다. 껍질에 소주를 담아 마시면 달큰한 멍게 향이 입안에서 너울거린다.

 

 

 

세발나물

6. 세발나물
과거 세발나물은 시장에서 보기 힘든 꽤 귀한 나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인공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봄이면 좌판에 그득그득 깔렸다. 갯벌에서 소금기를 머금고 자란다고 하여 시장 상인들은 ‘갯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근자근 씹다 보면 바다의 짠맛이 슬며시 감돈다. 무침에 간장, 소금을 넣지 않아도 싱거운 느낌이 없다. 냉장고에서 오이나 무, 양파를 꺼내 세발나물 두께로 가늘게 썬다. 옴폭한 그릇에 몽땅 집어넣고 무쳐 먹으면 비슷한 식감이 입안에서 기분 좋게 엉킨다. 딸기 스무디를 만들 때 슬쩍 넣으면 기똥찬 맛을 낼 수 있다. 딸기의 단맛을 한껏 끌어올린다.

 

 

 

가리비

7. 가리비
봄꽃이 만개할 때쯤이면 이미 늦다. 겨울부터 초봄까지가 제철이다. 11월부터 3월 사이에만 통통하게 살찐 진짜 가리비를 맛볼 수 있다. 껍데기를 칼등으로 두드렸을 때 입을 쏜살같이 다무는 놈을 포함해 열댓 마리 고른다. 수심 깊은 곳에서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듯 패각을 마주쳐가며 신나게 이동하는 놈들이니 가리비의 신선도는 입을 다무는 순발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대로 회로 먹어도 좋지만, 날 좋은 봄에는 마트에서 장을 봐와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본다. 가리비는 살짝 데쳐 준비하고 청포도, 토마토, 루콜라 등을 곁들인다. 순식간에 카스파초 한 대접이 완성된다.

 

 

 

모자반

8. 모자반
시장에서 늘 미역, 다시마, 톳 옆에 진열해 판매한다. 생김새 때문에 자칫
톳과 헷갈릴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톳과 모자반,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물에 젖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까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자세히 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구슬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동그란 알갱이가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이 모자반이다. 모자반은 이 알갱이 맛으로 먹는다. 아작 씹으면 알갱이가 톡, 톡 터지며 소리를 낸다. 이 재미에 빠지면 일부러 알갱이가 주렁주렁 달린 것으로 고르기도 한다. 집으로 가져온 뒤에는 굵은 소금을 넣고 바락바락 치대어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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