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토론회 “4개 진흥기구로 개편해야”…‘대중문화산업의 코트라’ 설립 주장도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에서 열린 ‘문화정책 대안모색 연속토론회’ 3번째 행사인 ‘문화산업 지원정책의 과제와 새로운 패러다임’ 참석자들 모습. / 사진=고재석 기자

블랙리스트의 시대다. 수없이 많은 문화계 인사가 문화예술 관련 예산 ‘지원배제명단’에 이름이 쓰여 고통 받은 시간이다. 묵은 과제와 새 패러다임을 논하는 토론회 열기는 뜨거웠다.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자리에서 대중문화산업의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수출의 새 엔진이 되어야 할 중소규모 제작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또 원장 구속으로 곤욕을 치른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발전적으로 해체해 4개 부문의 진흥기구로 나눠야 한다는 제안도 거론됐다.

22일 오후 2시 문화연대는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에서 ‘문화산업 지원정책의 과제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8일부터 4회에 걸쳐 기획된 ‘문화정책 대안모색 연속토론회’의 세 번째 행사다.

비가 내려 궂은 날씨에도 토론회에는 행사장에 마련된 좌석의 대부분이 가득차서 주최 측이 추가로 의자를 배치하기도 했다. 그만큼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문화산업의 새 패러다임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기조발제를 맡은 최승훈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 정책위원은 중소규모 제작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나가 현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중문화산업의 코트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문체부 직제 중 저작권정책관을 통상정책관으로 개편하고 통상정책과를 신설해야 한다. 또 무역 및 해외투자 전담지원기관으로 대중문화산업통상진흥원을 설립해 해외 주요 거점별로 지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트라가 제조업에 제공하는 수준의 투자지원 체계를 운영하자는 얘기다.

최 위원은 “대중문화산업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크게 심화돼 있다. 양극화로 나타난 결과가 제작기반 붕괴와 창작역량 소진이다. 그럼에도 (산업의) 외형적 성장이 돋보이는 이유는 (한류 등) 수출 덕”이라며 “중소규모 제작사들이 글로벌 경쟁력 갖춘 상품을 만들어낼 역량을 갖추는 게 한국대중문화산업의 새 엔진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날 토론회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발전적 해체도 주장했다. 콘진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5월 기존 문화콘텐츠진흥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게임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센터, 소프트웨어진흥원 디지털콘텐츠사업단 등 5개 콘텐츠 관련 기관이 통합돼 전격 출범했다.

현재는 본부만 6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통합 명분은 콘텐츠 진흥 기능 일원화였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진 국정농단 정국에서 송성각 원장이 강요미수와 뇌물, 사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전임인 두 명의 원장도 임기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
 

전남 나주에 자리한 한국콘텐츠진흥원 모습. 22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콘진원을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사진=뉴스1

최 위원은 “보수정권 10년 간 가장 잘못된 정책 첫 번째는 이명박 정부 초기 때 전격 단행된 대중문화산업 진흥기관 통폐합”이라며 “이 탓에 정부 진흥체계가 현장과 멀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소요소에 필요한 진지를 만들어 전선에 맞게 싸워야 한다. 게임산업진흥원, 대중음악산업진흥원, 영상산업진흥원, 만화산업진흥원 등 4개의 진흥기구를 신설해 현장과의 소통과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음악현장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김병찬 플럭서스 대표도 이에 동조했다. 음악은 아직 관련 산업진흥기관이 없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는 스트리밍 시장이 이제야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벌써 다 성장했다. 더 이상 올라가기 쉽지 않다”며 “이런 문제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연구로 해결하기 위해 음악분야 진흥기구가 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연대 집행위원장)도 “대중음악 진흥기구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전체적이 진흥기구들을 통합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동력이 없었다”며 “역량 있는 음악관계자들이 많기 때문에 (만들어지면)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돼서 진흥기구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화분야서도 관련된 문제가 제기됐다. 한상정 인천대 교수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생기면서 초등학교 앞 문방구 만화책이 다 없어졌다. 그러면서 출판산업, 만화산업이 무너졌다. (하지만) 어떤 법이나 정책도 (이를) 정리하지 못했다. 만화는 행정사이드에서 관심 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콘진원 통합 이후에는 마치 (만화분야 진흥책이) 모래알처럼 변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기구가 공고히 자리매김한 영화분야서도 지적은 이어졌다. 전영문 영화 프로듀서는 “블랙리스트, 부산국제영화제 파행, 모태펀드 사전검열 등 상상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이 정부에서)일어났다. 그런데도 영진위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며 “중국시장이 커가니 기껏 하는 게 영진위 북경사무소 하나 만들어놓는 거다. 얼마나 근시안적인가”라고 성토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궂은 날씨에도 문화 분야 현장관계자와 시민 등 많은 인원이 자리를 찾았다. 또 행사장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국정농단에 휘말려 장관직도 부재하고 부처 존폐론까지 나온 상황서 일선 공무원들이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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