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분식회계 추방연대 대표 “회계사기 막을 핵심은 따로 있다” 강조

지난달 27일 역삼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김영태 분식회계 추방연대 대표. / 사진= 최형균 기자

수주산업 및 건설업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의혹 수사, 대우건설 3분기 사업보고서 의견거절 등이 주된 이유다. 이에 건설업 분식회계 의혹을 다루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 회계감사에 있어 전반적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현행 외부감사법의 문제점, 정치권과 정부의 회계감사 강화 움직임의 골자와 개선점 등을 차례로 다룬다. <편집자주>

 

 

“변죽만 울린다.”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을 꼬집는 문장이다. 2015년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을 시작으로 대우건설 및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분식회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영태 분식회계 추방연대(이하 분추연) 대표는 이를 예견된 사태로 진단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핵심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태 분추연 대표는 회계 전문가다. 2008년 현대자동차 미국 알라바마 공장 재경본부장(CFO)를 시작으로 2012년 현대차 재경사업부장, 2015년 현대엔지니어링 재경본부장을 지냈다. 건설업을 포함한 수주산업 분식회계 사태의 원인과 근절방안을 그는 현장에서 깨달았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을 퇴사하고 시민단체 분추연을 지난해 말 설립했다. 시민과 함께 분식회계를 추방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역삼동에 위치한 분추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연신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방안으로 ‘감사인 지정제’,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을 재시했다. 그는 그래야만 회계법인, 건설업체들이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를 저지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분식회계를 넘어 최근 회계사기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다. 분식회계에 대한 세간의 문제의식이 커진 것 같다.

분식회계는 일반적인 용어다. 회계사기란 단어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수사 중간결과가 발표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의 5조7000억원 분식회계는 단순한 분식회계가 아니다. 집단적이고 교묘하게 타인을 속이는 점에서 사기라고 (사정당국이) 판단한 것이다.

나는 분식회계와 회계사기의 구분을 이렇게 정의한다. 분식회계는 기업 혼자서도 가능하다. 단순하게 비용을 축소하거나 계열사 간 부당지원하는 것을 숨기는 것이다. 분식회계는 은밀하게 진행된다. 내부고발자가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 적발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회계사기는 회계법인의 협조가 필요하다. 매출액과 비용을 동시에 조작해 기업이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손익이 좋은 것으로 위장하는 사기수법이다. 회계사기는 재무제표만 엄밀하게 분석해도 사기수법을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회계사기는 반드시 회계법인이라는 공범이 필요하다.

건설업을 포함한 수주산업을 향한 분식회계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수주산업의 회계처리는 진행기준에 따라서 한다. 제대로만 하면 진행기준 회계처리 방식은 수주산업에 있어 이상적이다. 연도별 매출액과 손익의 추세까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이 진행기준 회계처리 방식이 악용될 때가 문제다. 분식회계를 목적으로 사용되면 공사 종료시점까지 손익이 아주 좋은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회계감사자의 묵인이다. 완공까지 3~4년 걸리는 공사에서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마치 이익이 나게 만들 수 있다. 매출액을 과대계상해 분식회계를 하면 실적이 매우 좋아진다. 해당 기업 대표이사는 (공사완료 시까지)임기가 보장된다. 

진행기준 회계처리에 목숨을 거는 대표이사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분식회계 의혹도 커지는 상황이다.

수주산업 선진화, 핵심감사제 등으로 건설업 정보공개 범위가 넓어졌다. 건설업 신뢰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까?

수주산업 선진화 방안은 전년도 매출액의 5% 이상 되는 공사현장별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는 종전 회계처리 방식보다 더 진일보한 것이다. 핵심감사제도는 회계법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획기적으로 분식회계를 방지할 수도 있는 제도다. 

다만 3분기 해당 제도를 시행한 결과를 보면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아랍에미리트(UAE)의 타크리어(Takreer)사의 공사현장을 들 수 있다. 5개 건설사가 참여한 10조원대 대규모 공사다. 이 현장의 공사완공이 이래저래 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대로 감사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만약 핵심감사제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이 부분이 집중조명 받았을 것이다.

최근 대우건설 3분기 감사보고서에 지정감사인이 의견거절을 제시했다. 건설업 분식회계 우려가 재점화되고 있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정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방조 또는 묵인 단계를 넘어 권고한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의견 거절이란) 제스처를 취해서라도 회계감사를 원칙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정감사제 대상 기업인)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해선 대우건설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삼성그룹의 후광효과 때문이다. 만약 안진회계법인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해서도 동일한 분기의견 거절을 통보했다면 100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해 분기보고서 의견거절을 제외했기에 50점에 불과한 조치다. 결국 만만한 업체만 골라서 생색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다만 이번 의견거절로 인해 (건설업 회계분석에 있어) 긍정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대우건설이 연말 회계감사를 앞당겨 각 공사현장을 회계법인과 함께 확인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설업에서 분식회계를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인가

회계법인이 분식회계 공범이 아닐 때를 가정해보자. 회계감사를 진행한다 해도 회계법인에게 걸리는 제약이 무수히 많다. 회계법인은 검찰이 아니다. 이에 건설사 재무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회계정보에 접근할 때마다 일일이 금융당국에 정보요청을 해야 한다. 정보접근 권한 자체가 제한된 상황이다.

따라서 회계법인 공조 없이도 건설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자료를 조작, 은폐하는 게 가능하다. 이에 대다수 분식회계는 내부 고발자의 제보 없이는 적발하기 힘든 상황이다.


회계법인들이 감사보수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저가수임으로 정확한 회계감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를 어떻게 보나

감사보수 현실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회계업계가 요구하는 ‘감사보수 최저한도법’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금은 기업이 ‘갑’이고 회계법인이 ‘을’이다. 수임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회계법인은 기업에 수그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양측의 입장을 뒤바꿀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그러면 감사보수는 자연스레 현실화된다. 기차에 비유하면 기관차(회계법인)가 앞에 있고 객차(기업)가 뒤에 따라가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회계법인이 ‘을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방안은

현행 자유수임제를 폐지하고 ‘감사인 지정제’를 공식화해야 한다. 감사법인이 3년마다 다른 회계법인으로 바뀌면 (회계법인이) 원칙대로 감사할 수 밖에 없다. 후임 회계법인이 전임 회계법인이 감사한 회계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회계법인에 대한 대우를 자연스레 높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방법은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분식회계나 회계사기를 저지른 기업,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규정을 엄격히 하는 것이 골자다. 회게법인은 회계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회계법인은 원칙대로 엄격하게 회계감사를 진행하게 된다.

두 제도 중 어느 하나를 시행해도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는 방지된다. 또한 회계법인에 대한 감사보수도 현실화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 6+ (1, 3) 등 혼합감사제 도입(6년은 자율감사제, 1~3년은 지정감사제 혼합 적용), 지정감사제 범위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의미한 말 장난에 불과하다. 감사인 지정제 요구가 커지자 이를 비켜가기 위한 꼼수다. 대한민국에서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선 감사인 지정제와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 제정 밖에 없다.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대책이다.

정치권에서 기업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회계감사가 강화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강력한 처벌법 도입 및 회계감사 기준의 획기적 변화를 주저하고 있다. 근본적 해결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금융위원회 차원에서 회계제도 개혁 TF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사항이 논의돼야 한다고 보나

감사인지정제 전면 시행, 자유선임제 하에서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 제정이란 두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나머지 혼합제, 지정감사제 확대, 감사보수 최저한도법 등은 꼼수에 불과하다.

최근 금감원이 감사인 등록제라는 것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감사인지정제와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전혀 다르다.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평가해 요건을 갖춘 회계법인에 상장사, 금융회사 외부감사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다만 감사인등록제 역시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대책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는 안진회계법인과의 공조로 일어났다. 안진이 중소규모 회계법인이라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안진회계법인은 삼일, 삼정, EY한영과 더불어 국내 빅4 회계법인에 속한다) 금감원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인 등록제를 들고 나온 것은 감사인지정제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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