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번째 이야기

새벽 3시 고요함마저 잠들 시간에 희미한 네온사인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순대국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에 허기진 배와 뭉쳐버린 긴장을 녹여본다. 무심코 숟가락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응시해본다. 그리고 방금 전 꺼져버릴 뻔한 생명을 떠올린다. 생각이 생각을 잠재울 쯤 내일 수술 스케줄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내일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수술실이다.
나는 흉부외과 수술실 전담 간호사다. 쉴 새 없이 “응급”을 외쳐대며 수술실을 긴장시킨다. 흉부외과 교수의 세 번째 손으로서 의사와 호흡을 맞춘다. 피로 얼룩진 마스크, 출퇴근 없이 걸려오는 응급수술 전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근무시간 그리고 제도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전담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가 떠안고 가는 삶의 무게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사회초년생. 이 말은 한숨을 부른다. 이 호칭 하나로 모든 고민과 삶을 옥죄는 일들은 당연시 돼버린다. 사회초년생은 당연한 것들을 익혀가는 초심자쯤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이 당연한 것을 못 견디고 떠나는 초년생이 부지기수다. 입사 동기 145명 중 절반이 2년 새 병원을 떠났다. 왜 떠나는 것일까? 그리고 떠나는 그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사회는 당연한 것일까?

어떤 직장을 가든 힘들 수 있다. 갈등할 수도 있다. 직장 옮기는 것이 도피처가 되면 안 된다는 말도 이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다. 힘들어도 버텨내야 할 이유가 있고, 단순하지만 지금과는 달라지고 싶은 이유가 사회초년생에게는 존재한다. 

사회초년생의 선택이 존중받기 힘든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근무환경이 열악해서가 아닌 떠나는 이가 인내하지 못해서, 사회를 너무 잘 알아서가 아닌 아무 것도 몰라서 떠난다고 혹자는 혀를 찬다. 그러나 하루 하루 무너져 내린 끝에 이직이나 퇴직을 고려하는 사회초년생에게 루저라는 딱지는 가혹하다.

사회초년생에게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 내가 일하는 직장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인생을 바꿀 수는 있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보다도 존중받아야 한다. 2년차 수술실 전담 간호사에게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응급을 외칠 힘이 있고, 떠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박수칠 손이 있다. 

대학을 떠나 간호사복을 입은 내가 얻은 것은 월급 아닌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었다.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끊임없이 인내하고 버텨냈으며 고뇌해야만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 선택의 이유는 내가 나약해서도, 당연한 것을 해내지 못해서도 아니다. 사회 초년생을 떠나는 루저와 버틴 승리자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용기 있게 떠난 승리자와 남겨진 루저가 아닐까.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