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특검 고발, 시국영화 개봉 잇달아…‘다이빙벨’ TV 방영까지

15일 오후 국회에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대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4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이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문화융성을 내세운 정부가 되레 문화계를 짓밟는데 적극적이었다는 역설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가운데, 그간 숨죽이던 문화계가 본격적인 역습에 나선 모양새다. 블랙리스트로 고통 받은 예술가 단체는 정권 수뇌부들을 직접 특검에 고발했다. 정권이 끝나가자 움츠리던 영화계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이번 정부 문화검열의 상징인 영화 ‘다이빙벨’도 TV에 등장했다.


가장 날이 선 역습 방식은 고발이다. 문화연대와 예술인소셜유니온,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12개 단체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9명을 지난 12일 박영수 특검에 고발했다.

명단에는 이들 뿐 아니라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위원장, 용호성 전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 등 박근혜 정부 시기 검열 의혹에 휩싸였던 핵심인사들이 총망라돼 있다. 문예위는 예술가에게 지원하는 보조금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기관이다. 국립국악원 역시 검열사태 한복판에 서 있다.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 대표는 지난달 9일 서울문화재단 주최 토론회에 나와 “박근형 연출가와 함께 연극과 음악을 융합하는 작품을 올리려 했는데 국립국악원에서 무조건 연출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고 고발했다. 박근형 연출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로 정권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 역시 같은 자리에 나와 “문예위가 검열 사태 이후 더 교묘한 검열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와 관련해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4차 청문회에 출석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난 그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면서도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내 눈으로 본 적은 없다. 다만 보조금 문제가 있긴 했다”고 답변했다.

본격적인 역습 분위기는 최근 개봉영화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그간 원전사고를 다뤘다는 이유로 개봉연기가 의심돼왔던 영화 ‘판도라’도 드디어 선보였다. 1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7일 개봉한 판도라는 채 열흘이 안 돼 21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스크린수 역시 경쟁작들을 크게 웃도는 1000~1100개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을 이야기 전개의 축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제작비도 블록버스터급인 150억원에 이른다.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출연배우들이 굿판을 벌이고 있다. 현 시국과 절묘하게 맞물린 장면이라는 평가다. / 사진=NEW

 

박정욱 감독은 공식 개봉을 하루 앞둔 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에 출연해 “(영화를 기획할 당시가) 정확히 딱 이 정권의 출범 시기였다. 어떤 화가는 대통령을 희화화한 그림을 그렸다가 검찰조사도 받고 그렇게 표현의 자유가 억압이 돼 있었다. 약간 스스로 위축되는 그런 (시기였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더킹’은 아예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메인 슬로건을 홍보문구로 쓰고 있다. 제작사가 사진형태로 미리 공개한 영화장면 중에는 주인공들이 굿판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굿은 최순실 씨 국정농단 정국에서 빈번하게 등장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판도라와 더킹 모두 NEW가 투자배급한 영화다. NEW는 최근 정국서 가장 많이 등장한 영화인 ‘변호인’의 투자배급사다.

이번 정부 문화검열의 상징인 다이빙벨도 13일 TBS에서 전격방영됐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다이빙벨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 철회를 요구하면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가 파행위기를 겪는 직접 단초가 되기도 했다. TBS 방영 다음날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앵커브리핑을 통해 직접 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문화융성 같은 진흥정책은 예산을 갖고 있으면 어느 정부나 할 수 있다”며 “그런데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움직임은 돈과 상관없이 정권이 가진 이념에서 발현된다. 그런 게 금방 탄로가 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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