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의 왕 선조는 도망갔지만, 이순신이 대신 싸웠다.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놀아도 된다. 해경청장 임명이 잘못된 것이다."

 

지난 5일이다.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이렇게 언급했다. 비속한 표현이지만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데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의 인식이 그와 같다. 국회의원이라는 중요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에 대한 인식이 천박하다. 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한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첫째, 임진왜란 발발 당시 선조가 도망갔고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것을 살펴보자.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삼도순변사로 임명된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선조가 급하게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조정이 제 기능을 하도록 유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선조가 결사항전을 주장하여 한양에서 포로로 잡히거나 사망했다면, 일제강점기는 300년 일찍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양은 방어하기에 좋은 도성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당대의 일본군은 오랜 센고쿠(戰國) 시대를 거치며 공성전에 익숙했다. 임진왜란 후반기 일본군이 울산에 급하게 쌓은 울산성조차 조명연합군이 난공불랑의 요새로 여겨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음을 상기해본다면 선조가 결사항전을 선택한 상황에서의 패배는 명약관화하다. 물론 임진왜란 후반기 조선군은 일본군에게 많은 승리를 거두지만, 그것인 충무공 이순신이 거둔 해전에서의 승리로 일본군의 보급이 끊겨 사기가 저하된 이후 상황이다.

무엇보다 선조는 단순히 도망한 것이 아니었다.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몽진하는 와중에도 광해군과 임해군을 각각 남부와 함경도로 보내는 분조(分朝, 조정을 나눔)를 진행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근왕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에 반격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이었다. 

 

또 선조는 몽진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물론 그 직무수행에는 일본의 반간계와 선조 자신의 의심으로 인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체직하고 의병장들을 의심하는 등 오류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을 각각 도체찰사와 체찰사로 임명하여 전투를 담당하게 했으며,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같은 중신들을 중용해 명나라로부터 원군을 이끌어 냈다.

정유섭 의원의 발언처럼 선조가 박근혜와 동일하게 비교되려면 박근혜의 세월호 당시 7시간처럼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7년 동안 아무 일을 하지 않고 그 행적이 의문에 싸여 있어야 한다. 즉, 정유섭 의원 발언은 천박한 역사인식에서 나온 무식함의 발로다.

둘째, 인사권자로서 능력을 살펴보자.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대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무려 10품계나 승진시키는 파격을 통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선조 치세는 “목릉성세(목릉은 선조의 능호)”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인재들이 나와 문치의 꽃을 피운 시대다. 

 

특히 선조는 이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 내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끊임없이 경장(更張)을 주장한 율곡을 병조판서에 임명해 군 분야의 개혁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혁 시도는 다른 관료들의 반발에 밀려 무산되었지만, 선조는 적어도 임진왜란 이전에는 현명한 군주로서 능력을 보였다.

그렇지만 정유섭 의원이 ‘놀아도 된다’며 선조에 비유한 박근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당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의 인재풀은 빈약하며, 그의 인재 기용 역시 형편없음이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박헌철 헌법재판소장과의 유착설이 나오는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것, 최순실의 말만 듣고 “참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관료를 공무원에 대한 신분 보장에도 불구하고 파면한 것, 그리고 김종, 안종범, 조원동 등을 중용한 것 등은 오히려 선조의 인재 등용과 정반대다.

셋째,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권한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사람들에게 회자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2007년 12월 7일, 유조선과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했다. 이로 인해 태안반도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막대한 양의 원유에 뒤덮이는 환경 재난을 겪게 되었다.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하였고, 해양경찰청장에게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원유로 인한 환경오염을 방제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책무는 이것이다. 단순히 적절한 인사를 임명했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 인사에게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나누어주어 적절하게 자원을 동원하여 최고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 최고·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 핫라인을 통해 해경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받으면서도,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에서 90분이라는 시간동안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이는 한 국가의 국가원수로서 중대한 결격사유다. 따라서 박근혜의 7시간은 ‘제대로 된 인물을 임명했다면 놀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사건이 아니다. 더 심각한 국가적 문제다. 

 

정유섭 의원 발언은 역사와 대통령의 책무에 대해 무지했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에 있어 적절하지 못했다. 232만 명이 촛불을 든 중대한 문제다. 의원들의 이런 행태가 누적돼 무능하고 부적절한 지도자가 나오도록 만든 기저가 된 것이다.​ 통렬한 반성과 함께 탄핵에 동참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여당 국회의원의 인식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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