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측근회사 지원 여부에 “금시초문”…“고(故) 정주영 회장 5공 청문회 모습 보기 어려워”

 

예고대로였다.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1차 청문회 핵심 증인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정 회장은 시종일관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했다.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강제모금 사실을 폭로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조특위 1차 청문회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8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회장은 이날 회색 양복에 연한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오전 9시30분경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과 국회에 도착했다. 정 회장 외 총수 7인 모두 감색계열 어두운 양복을 갖춰 입은 것과 대비됐다.

당초 재계에서는 총수 9명 중 가장 고령인 정몽구(78) 회장이 건강문제 탓에 ‘독기 오른’ 의원들의 질문공세를 버텨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이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옆에 앉은 정 회장은 의원들의 날선 질문에 사뭇 침착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다만 정 회장 답에 ‘알맹이’는 없었다. 이날 정 회장은 최순실과 관련한 의혹 일체를 부인하거나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검찰 수사 결과 현대차는 안종범 전 수석으로부터 강요를 받고 최순실씨 지인 업체인 KD코퍼레이션에게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물품 11억원 상당을 납품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또 현대차가 차은택 씨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62억원의 광고를 몰아줬다고 발표했다.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주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나”라고 묻자 정 회장은 잠시 머뭇거린 뒤 “회사 규모가 워낙 커서 기억이 잘 안 난다"며 "광고에 대해 내가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그런 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 공소장을 보면 (현대차그룹이) KD 코퍼레이션과 미르재단에 돈을 뜯긴 것으로 나온다"며 "세계적 자동차 회사가 KD코퍼레이션과 플레이그라운드에 직권남용‧강요에 의해 돈 뜯긴 것에 대해 창피하지 않냐“고 일갈하자 정 회장은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런 사실이 있다고 하면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답변이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검찰조사에서 현대차그룹은 비선실세 외압에 피해를 입은 기업으로 묘사됐지만, 특검에 따라 반대급부를 노린 공범기업으로 규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대차 역시 이 점을 의식해 향후 족쇄가 될 수 있는 발언은 최대한 배제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승호 변호사는 “유례없는 국정농단 스캔들이다. 현재 검찰 수사 인력만으로는 기업 개개의 의혹 모두를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특위가 끝난 후 특검조사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특위에서 총수가 실언이라도 할 경우, 기업으로서는 집중조사를 피할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피해간 혐의들도 얼마든지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날 특위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룹 총수로서 발언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선친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청문회를 임하는 태도가 대비되는 탓이다.

정주영 회장은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정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해서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시류에 따라 돈을 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정경유착 사실을 전 국민 앞에 폭로한 바 있다. 정주영 회장 특유의 우직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발언이었다는 게 재계 평가다.

6일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전 부사장은 “사석에서의 정몽구 회장은 발언 하나 하나에도 무게가 실린다. 돌려 말하는 게 없고 모든 게 직언이다. 정주영 회장과 많이 닮은 모습”이라며 “다만 청문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상황은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맨’으로서 또 국민으로서 때론 기죽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밝히는 당당한 모습이 기대됐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