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표현·평가 기법 대신 본질을 제시할 때

"금덩어리가 담겨 있는 보자기가 있다. 이 보자기를 보자기 값만 주고 사오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

 

지난해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한 국내 증권사에서 내놨던 보고서의 문장이다. 기자는 이 글을 읽고 당시 작성하고 있던 기사의 수사적 표현(레토릭)을 모두 지웠다.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생각해낼 수 없어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보자기에 담겨 있는 금덩어리의 가치까지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부정을 두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국민연금이 연일 질타를 받고 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검찰 수사만으로도 투자자들은 "그럼 그렇지"를 연발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비율 산정을 두고 말이 많았다. 해외 건설 사업 손실 우려 속에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한 상태에서 합병 비율을 산정해서다. 일부 삼성물산 주주들은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가치와 자산가치를 제대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데 사용된 방식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나 국내 증권 업계에서 주식가치평가를 떠받치고 있는 대전제는 시장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상장시 공모가 산정이나 대규모 인수합병 등 다양한 거래에서 상장사의 주가를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거부할 수 없는 근거를 들고 나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법원에서 시장 가격을 부정하는 판단을 내리면 지금까지 증권업을 지탱하던 기둥이 흔들리게 된다. 실제로 법원에서는 관련 소송에서 합병비율에는 적법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주식매수가만 낮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금덩이가 담겨 있는 보자기다. 보자기에 금덩이의 가치를 더하면 합병비율이 유리하게 변경된다. 실제로 수익가치와 자산가치를 3대2로 가중평균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비상장주식 가치평가 방법을 적용하면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높아진다.

 

이 지적은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던 주된 근거기도 했다. 가치평가 방식에서는 부분의합(SOTP)을 통해 도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삼성물산의 보유자산 가치를 일부 다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려운 설명은 가끔 진실을 알아보기 어렵게 한다. 상증법이 어떤지 부분의 합은 어떻게 계산했는지 자산가치가 무엇이고 시가평가 방식은 어떤 것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자기 속에 금덩어리가 들어있다는 지적이면 충분하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일반투자자들이라도 삼성물산에 적용된 비율이 부당하는 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어려운 내용을 풀어 일반 투자자에게 설명해야할 증권가 애널리스트들 대다수는 어려운 설명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가치평가가 어떻고 목표주가가 어떻다는 지적은 많았지만 본질은 피해갔다. 더구나 매도 리포트에 인색한 우리 증권 업계 특성상 합병전 삼성물산 매수 의견도 나왔다. 이 리포트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가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계속해서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물산 합병후 발행된 증권사 리포트에서 부분의합(SOTP)을 활용한 가치평가가 자주 보인다는 점 정도가 우리 증권가가 얻은 수확이다. 여전히 주가전망은 어긋날 때가 많고 애널리스트의 매수 보고서가 나오면 매도하라는 말이 개인투자자의 격언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치평가 방식을 변경했다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어떤 투자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알게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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