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에 봉사한 힐러리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감사해야 한다. 힐러리는 아주 오랫동안 아주 힘든 일을 장기간 해왔다.”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자 도날드 트럼프는 수락연설을 통해 미국 사람들의 우려와 시장의 우려를 이 한 마디로 잠재웠다. 경쟁자였던 힐러리를 칭찬하는 것으로, 그 스스로 정상적 판단을 하고 있으며, 미국인과 시장이 우려하는 대로 막 나가지는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는 더 나아가 공화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으로 민주당까지 끌어안을 것임을 천명했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미국은 분열의 상처를 봉합해야 한다. 공화당원이건 민주당원이건 전국의 개인들이건, 이제 모든 미국인이 함께 뭉쳐 하나의 단합된 국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전역의 시민들에게 전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


그는 특히 트럼프 당선이 결정된 직후 ‘쇼크’ 반응을 보인 한국 언론과 증시를 비웃듯 자신은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선 훌륭한 경제정책으로 성장률을 배로 끌어 올려 미국경제를 다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우선주의를 걱정하는 국제사회와 우방에 대해선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지만, 우리는 또한 모든 나라들을 공평하게 대할 것”이라며 우려감을 불식시키는 멘트도 날렸다. 

 

한 마디로 트럼프 자신은 당선을 위해 강경한 발언, 돌출 발언을 연방 쏟아냈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합리적이며 전략적임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그 동안 한국 언론과 시장은 트럼프를 적대시했고, 지나치게 경계했다. 미국 민주당을 짝사랑하는 각 언론은 경쟁하다시피 트럼프가 당선되면 안 되는 이유,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 불리한 까닭 등의 콘셉트로 소설 같은 기사를 써댔다. 증시 참여자들은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매물을 쏟아내 코스피를 45포인트나 폭락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날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1.4%나 올랐다. 코스피는 다음날 2%가 넘게 급반등했다. 전날 비관론을 쏟아낸 언론이나 주가를 폭락시킨 시장이나 모두 섣부르게 판단했다고 질타한 셈이다.


이제 한국은 트럼프를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인물이나 공약에 대한 선입견이나 피상적 분석은 모두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연구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자의 사고는 전략적

우리가 갖고 있는 트럼프에 대한 정보 가운데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 것은 그가 매우 전략적이며, 성공한 기업인이란 사실이다. 트럼프에 대한 연구는 이 두 가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먼저 대선 기간 동안의 트럼프를 보자. 트럼프는 온갖 부정적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승리를 자신하며, 부족한 역량을 전략지역에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거에서 후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자비로 나섰다. 그러다보니 대선주자에게 돈을 대야 편하게 자신들의 이권을 밀어붙일 수 있는 재계는 그를 등지고 힐러리를 전폭 지원했다. 이것이 외면적으로 힐러리에게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선거기간 내내 그릇된 지지율을 나타내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 회사들을 최대의 패배자로 만든 이유가 됐다. 

 

미 선관위 신고 기준으로 힐러리 캠프는 이번 선거 기간 동안 4억5000만 달러를 지출했고, 트럼프 측은 2억 39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공식 모금액은 그보다 훨씬 큰 차이를 보였다. 힐러리는 월가의 대형 헤지펀드나 JP모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DLA파이퍼 모건스탠리 같은 금융기관, 캘리포니아대,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등 유수의 대학 등으로부터 6억8720만 달러의 기부를 받았다. 이에 비해 트럼프 후보 측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억69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수퍼팩이나 정당 기부금 등을 포함하면 힐러리의 후원금은 1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주요 언론도 돈으로 선거를 한 힐러리 편에 섰다. 

 

외면상으로 볼 때 트럼프는 자금력이나 언론매체의 지원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싸움에 나섰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는 정면승부 대신 자신만의 전략으로 임했다. 모든 지역에 힘을 쏟는 대신 철저히 될 곳에 집중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50주 가운데 동부와 서부 주들은 민주당 성향이 강하고 중부는 공화당 성향이 강하다. 양당의 텃밭인 셈이다. 그런데 남부의 플로리다를 비롯해 5대호 인근의 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서부의 캘리포니아, 네바다는 물론이고 태평양 연안의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와 더불어 북동부의 뉴햄프셔는 그렇질 않다. 스윙 스테이트라고 선거 때마다 표가 갈리기에 최대 승부처로 꼽혀왔다. 

 

트럼프는 이 가운데 민주당 성향이 강해진 캘리포니아와 네바다는 아예 넘겨줬다. 그 대신 나머지 지역 중에서 선거인단이 많은 플로리다를 비롯해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니아 등 태평양 연안주와 제조업 쇠퇴로 실업률이 높은 5대호 연안을 집중 공략했다. 

 

미국 주요 언론이 자리 잡고 있는 뉴욕과 워싱턴D.C. LA 등을 완전히 내주는 대신 그들의 관심이 덜한 지역에서 조용히 기반을 넓혔다. 선거전에서도 언론의 반발을 살 만한 말을 쏟아내 그들의 관심을 돌려버렸다.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였기에 언론과의 결별이라는 전략으로 승리를 거머쥔 셈이다.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야 하는 첫 이유다.

 


◇그가 택할 정책 논리적으로 봐야

이제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은 성공한 경제인으로서의 트럼프다.'


사실 선거기간 동안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밀린 트럼프에 관심을 두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그가 성공한 경영인이기에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금 성공한 기업인 출신으로 그가 실제 어떤 정책을 펼지를 새겨봐야 하는 까닭이다.


반트럼프 전선에 섰던 미국 주요 언론과 월가는 아직도 트럼프에 비판적인 자료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 무비판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감이 든다.

 

결과가 확정된 지금은 그런 부정적 자료들부터 멀리할 필요가 있다. 폴 라이언 미 하원 의장이 미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 일행에게 “트럼프 발언은 대선용”이라며 “과민반응하지 말라”고 조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트럼프가 강조한 ‘더 강한 미국’을 만들 수단, 그 이전에 그에게 표를 몰아 준 소위 러스트 벨트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줄 정책이 무언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그가 선거전 때 내세운 고립주의를 고집하리라고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 또한 자신의 정책이 초래할 부작용을 저울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현 시대 여건에 맞는 정책 가운데 GDP를 늘리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어떤 정책이 유리한지 따져보는 게 우선일 듯하다.


먼저 오바마 케어의 수정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중산층 이하 계층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 국민 건강보험제를 시행하고 약제 및 의료비를 통제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재정 부담을 폭증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트럼프가 이를 수정할 경우 미국의 신약개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한 그가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새로운 건설과 지역개발 투자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자국 철강 산업을 살리기 위해 보호무역을 채택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글로벌 거래의 득실을 따져 판단할 대목이다. 무역장벽을 높이는 게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최근 칼럼을 통해 트럼프 당선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선거 땐 쉬운 말로 보호무역을 강조한 트럼프라도 막상 취임하게 되면 세계화의 큰 흐름을 하루아침에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선전효과가 큰 안보비용 분담을 먼저 요구할 가능성은 다분해 보인다. 논리적으로도 이유가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유권자를 설득하는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환율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하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타당성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 동안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재계의 엄살을 과도하게 받아들여 고환율 체제를 장기간 이어왔다. 그러나 고환율로 인한 수익은 수출대기업 내부에서 나눠먹었을 뿐 사회전체로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 주도의 과도한 임금인상을 초래해 국내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약화시켰고 전 국민에게 물가상승 부담을 안겼다.

우리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트럼프 체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순간 무분별한 경계심보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트럼프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자료를 확보하고 논리적으로 그를 맞을 필요가 있다. 이제 호불호나 도덕을 떠나 실제의 트럼프를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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