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플랫폼 내세워 판세 주도…완다 공습에 미국 의회도 긴장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의 세계 콘텐츠사업 공략이 가히 공습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은 마윈 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T-Mall) 한국관 개통식'에서 개회사를 하는 모습. / 사진=뉴스1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과 손잡으면서 세계 콘텐츠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다수 매체에서 양사의 ‘윈-윈(win win)’ 협상이라는 분석을 쏟아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최종 승자는 마윈일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platform) 위주로 재편된 산업구조 때문이다.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은 AMC, 카마이크, 레전더리픽쳐스를 인수하면서 미국 의회의 견제 대상이 됐다. 완다가 극장과 제작사를 동시 인수하며 미국에서 ‘수직계열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알리바바와 완다는 디지털 전략도 미국 업체보다 세밀하게 짜고 있는 모양새다.


◇ 스필버그 손 잡은 마윈…무게는 알리바바로 기울어

알리바바와 완다가 미국 할리우드를 본격 공략하고 있다. 마윈과 왕젠린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두려운 이름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알리바바 자회사 알리바바픽쳐스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난해 설립한 영화제작사이자 투자배급사인 엠블린 파트너스와 9일(현지시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공동제작한 영화를 중국에 배급하는 데 협조하기로 했다. 또 알리바바픽쳐스는 앰블린 파트너스의 지분 일부도 인수했다. 계약기간과 금액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앰블린 파트너스는 지난해 드림웍스 스튜디오, 파티시먼트 미디어, 릴라이언스 엔터테인먼트, 엔터테인먼트원 등이 손잡고 만든 컨소시엄 업체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계약 체결은 양사 모두에게 이익이다. 앰블린 파트너스 입장에서는 중국 현지 공략에 날개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알리바바는 온라인 쇼핑몰과 티켓팅 플랫폼 등을 통해 중국 소비자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알리바바 플랫폼 사용자는 5억명에 이른다. 앰블린 파트너스의 공동대표인 제프 스몰(Jeff Small)도 계약체결에 즈음해 중국 현지에서 더 광범위한 시장 전략을 그리게 됐다는 기대감을 나타냈을 정도다.

국내 한 영화업계 관계자도 “알리바바나 텐센트, 바이두는 사용자 데이터베이스(DB)를 갖고 있어 배급부문에서 강세”라고 밝혔다.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이제 미국 의회가 견제하는 인물이 됐다. / 사진=완다그룹

 

알리바바는 콘텐츠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마윈 회장의 말은 이 같은 노림수를 잘 보여준다. 그는 파트너십 체결 직후 중국 베이징 시내 호텔에서 스필버그 감독과 가진 대담에서 “서구와 중국이 가진 유일한 차이는, 서구가 중국보다 이야기를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앰블린이 가진 콘텐츠 생산력에 기대감을 걸어보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무게중심은 알리바바로 기운다. 앰블린 파트너스가 중국에 콘텐츠를 배급하려면 결국 알리바바라는 플랫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콘텐츠산업 전공 학자도 “중국에는 인구가 많으니 플랫폼을 만들어 내수를 활용하는 방법이 돈을 벌어들이는 데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보다 플랫폼 사업자에 힘이 쏠리는 최근 기류도 알리바바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영화시장에서는 플랫폼 장악전략을 펼친 완다가 콘텐츠 전략에 집중했던 화이브라더스를 이미 멀찌감치 따돌렸다.

미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플랫폼 사업자 넷플릭스와 콘텐츠 사업자 디즈니의 협업은 넷플릭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9월부터 넷플릭스 플랫폼 상에서 디즈니 콘텐츠를 독점공급하고 있다. 디즈니는 마블과 픽사, 루카스필름 등 세계최고 경쟁력을 갖춘 제작사들을 갖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디즈니 영화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넷플릭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디즈니가 넷플릭스 인수 가능성을 타진한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 찾아야 한다. 알리바바와 앰블린의 중국 내 협업도 시간이 갈수록 알리바바에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 중국 기업들의 할리우드 쇼핑…미국은 긴장 중

또 이번 파트너십으로 마윈이 할리우드 본격공습 제 2막을 열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알리바바는 ‘미션임파서블’과 ‘스타트렉 비욘드’, ‘닌자터틀’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투자했었다. 투자를 통해 간접 진출하던 방식에서 현지 유력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간거다. 

플랫폼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미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마윈이 스필버그와 손잡은 사이 미국에선 왕젠린 경계경보가 떨어졌다.

공화당 소속인 존 컬버슨(John Culberson) 하원의원은 법무부에 “완다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미국 미디어들이 선전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따져보라는 서한을 보냈다. 컬버슨 의원은 하원 내 법, 과학, 통상 등을 소관하는 소위원회 위원장이다. 완다는 극장 체인 AMC와 카마이크 시네마, 제작사 레전더리 픽쳐스를 연이어 사들였다. 

 

완다가 인수한 레전더리 픽쳐스가 제작한 영화. / 사진=완다그룹

왕젠린 회장의 할리우드 쇼핑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메이저 6대 영화스튜디오 중 하나를 인수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실화하면 완다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서 수직계열화할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유독 완다에 민감한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완다의 플랫폼 장악 전략과 중국 당국과의 관계다. 완다는 미국에서 극장과 제작사를 동시에 인수하고 있다. 이 뒤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사정에 밝은 국내 영화업계 관계자는 “외국 플랫폼을 장악하면 거기에 중국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다. 왕젠린 회장은 그런 중국 정부 의도를 간파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업체들이 OTT(over the top·인터넷TV) 등 디지털 시장 전략도 계속 가다듬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9월 ‘중국판 넷플릭스’를 표방한 ‘TBO’(Tmall Box Office)의 베타서비스를 출시했다. 역시 중국판 넷플릭스를 내세운 러티비(Letv)는 유력한 콘텐츠 기업으로 떠올랐다.

반면 미국 매체들은 아직 디지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문지현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디즈니는 방송(미디어 네트워크) 부문과 디지털 미디어 및 상품 부문의 성장이 부진하다”며 “매력적인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나 디지털과 연계가 미흡해 문제”라고 설명했다. 

스필버그 제작사와 손잡은 알리바바의 경우 OTT 경쟁력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OTT 경쟁력의 핵심은 보유 콘텐츠이다. 한국판 넷플릭스는 지상파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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