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미 금리인상 핑계 댈건가…본 예산 심의 충실도 높일 예결위 상설화를

 

11조원 규모에 달하는 추경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국회 문턱을 넘어 집행되게 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내용을 놓고 여당이 반발하면서 파행을 빚었던 국회가 조기에 정상화된 덕분이다.

추경 통과에 앞서 정부와 여당은 서별관 청문회 증인과 연계시켜 대립하던 야당을 겨냥해 “응급환자의 앰블런스를 막고 안 비켜주는 것과 같다"는 등 강력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추경이 그렇게 절박하고 꼭 필요한 것이냐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추경을 편성하면서 사유를 “기업 구조조정 영향을 최소화하고 브렉시트(Brexit) 등 대외여건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기업 구조조정을 추경 사유로 내세우지만 정작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조선업의 수주절벽과 실업대란이 가시화된 지난 4월까지도 추경 필요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추경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지금은 추경이 불가피한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정부는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었고 실제로 금융시장의 혼란도 이내 사그러들었다.

추경에 포함된 사업도 의문 투성이다. 발암물질 등이 검출된 학교의 우레탄 트랙 교체와 도서섬마을. 산간벽지의 통합관사 시설 개선, 게임산업지원과 콘텐츠 제작 등의 사업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지방도시에 컨벤션센터를 건립하는 사업까지 포함됐다가 심의과정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런 사업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꼭 해야할 사업이라면 새해 본 예산에 포함시켜 수행할 수 있음에도 굳이 본 예산에 수정을 가해 추가로 편성할 부득이한 사유가 뭔지 납득이 안된다.

사실 추경은 정부와 여당이 함부로 편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편성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 등에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무분별한 추경 편성을 막고 있다.

그럼에도 추경이 연례행사처럼 매년 되풀이되고 있으니 비정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만 빼고 줄곧 추경을 편성했다. 그나마 2014년에도 세월호 참사 이후 무려 4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보강을 실시했으니 본 예산으로 버틴 해는 단 한해도 없는 셈이다. 나라 살림이 그만큼 계획따로, 실행따로 였다는 의미다. 

 

추경을 편성하면서 내놓는 핑계도 다양하다. 박근혜 정부 취임 첫해인 2013년에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고 대규모 세수결손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지난해는 메르스 사태와 가뭄에 대응한다며 추경을 편성했다. 그러더니 올해는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브렉시트를 내세운 것이다. 

 

내년에 또 추경을 편성한다면 어떤 핑계를 댈건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경제 위축을 앞세울건가.


추경이 편성될때마다 정부는 국회통과를 채근하지만 정작 배정된 예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채 해를 넘기기 일쑤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추경 6조764억원에 대한 집행률은 89%로, 불용처리된 돈이 599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는 추경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이 7월 24일로 올해보다 한달이상 빨랐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앰블런스가 달려가듯 급박하게 쓸 곳이 있어 편성한다는 추경인데 쓰지 못하고 남겼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편성과 심의가 모두 졸속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지난해 보다 규모가 5조원이나 많고 예산을 사용할 기간은 짧은 올해는 오죽할까 싶다.

자연재해로 막대한 피해를 겪은 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추경이 매년 상투적으로 편성되는 것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본 예산을 짜임새있게 짜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해 국회가 386조원에 달하는 2016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0일 정도였다.그나마 정쟁으로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날이 많다보니 실제 예산 심의에 투입한 기간은 불과 한달 남짓이다.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 제출 시한이 올해부터 10월 2일에서 9월2일로 앞당겨졌다. 정부는 시한에 맞춰 400조 7000억원의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12월2일까지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예산 심의 기간이 한달 길어졌다고 하지만 40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과 방대한 사업을 여야가 완벽한 심의를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국회 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법상 예산안과 결산안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먼저 심사를 한 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최종 심의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한 뒤에야 국회가 심의를 시작하면 시간상으로도 내실있는 검토가 어렵다는 것이 지적된지 오래다. 그래서 국회 예결위를 상설화해서, 예산 편성 초기 단계부터 국회가 감시하게 하자는 주장이 나온지 10년이 넘었지만 말로 그치고 있으니 안타깝다.

국민의 삶은 팍팍하기 짝이 없다. 국회는 어려운 형편에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국민의 눈물과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국가 예산을 낭비없이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국회의원들이 내년에는 추경이라는 말이 등장할 여지가 없게 하겠다는 각오로 새해 본 예산 심의부터 꼼꼼하게 마무리지어야 한다. 예결위 상설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상투적 추경 편성은 올해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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