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키우려면 창의력 발휘하게 풀어줘야

최근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부실 기업들이 경제를 흔들고 있다. 그런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거의 정부 주도로 진행된다. 당연히 시장은 당국의 처분을 기다린다. 시장은 있되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일까.


지난 8월 초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이나 금융감독원이 8일 발표한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 및 대응방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기관의 정책은 겉보기엔 공통점이 전혀 없다. 그런데 내용을 파보면 씁쓸한 공통점이 보인다. 국가경제는 고려하지 않고 금융기관 보호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그것도 그들만의 잣대를 갖고서 말이다.

금융위는 자료에서 ‘신성장 동력 산업과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등을 지원할 투자은행’을 육성하려고 2013년 도입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증권산업은 여전히 ‘중개업’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혁신기업에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하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금융위의 판단은 관점 자체가 잘못됐다. 모든 금융기관을 ‘은행’ 관점에서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용공여를 제대로 하려면 자기자본이 많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것부터 그릇됐다.


‘당초 기준(3조원)보다 높은 자기자본 수준(4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과 외국환 업무를 허용’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게다가 금융투자회사의 업무를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는 구상까지 비췄다. 큰 회사는 머리(아이디어)가 좋고 작은 회사는 머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 사고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국제적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금융위의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 방안이 증권사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능력이 안 돼도 무조건 자본금만 늘리면 새 면허 주겠다고 한 것으로 이해했을 게 틀림없다.

◇무디스조차 금융당국 시각에 부정적

그나마 덜 답답한 건 당국보다 머리 좋은 금융사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중견 증권사는 모 캐피탈사의 상환전환 우선주에 투자했는데 보장수익률이 연 7~12%나 됐다.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이익도 잘 내는 회사에서 많은 이자수익을 올리게 됐으니 워런 버핏 부럽지 않은 투자였다. 

 

뒤에서부터 따져야 순위가 빠른 한 소형 증권사는 최근 새 경영진과 IB팀을 갖췄다. 증권가에선 이 팀이 웬만한 회사 이익과 맞먹는 돈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IB의 본질은 규모가 아니라 두뇌, 다시 말해 아이디어다. 당국은 새 기준을 만들어 그들을 묶자 말고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도록 내버려두고 격려해야 한다.

지금 성장률이 바닥을 기니 많은 사람들이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넘치는 돈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있다. 최근 초단기 금융상품인 MMF에 몰린 자금만도 130조원에 육박한다. 투기성 다분하고 효용은 낮은 ELS에도 대규모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융위 스스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은 RP(37%), ELS(36%)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전체 조달액의 73%’에 달하며 ‘RP의 경우 만기가 짧고(95%가 1주일 이내), RP․ELS는 담보채권 또는 헤지자산 보유가 불가피해 자금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시중자금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으로 흐르지 않고 단기로 떠돌면서 투기성 파생상품으로 흐르지만 당국은 거의 방조하는 듯하다. 그들이 금융을 시장의 기능이나 수요자 측면에서 보지 않고 제도와 공급자 위주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을 금융기관, 특히 은행 중심으로 보는 것은 금융감독원도 마찬가지다. 금감원도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다룬 이번 자료에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고용 문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 ‘은행들이 구조조정대상업체에 대한 충당금을 상당부분 반영’했다거나 ‘은행권 의 손실흡수 여력 등을 감안할 때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금융의 기본은 돈 흐름을 원활하게 해 경제가 막힘없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금융투자회사의 존재 이유도 넘치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적절히 연결해주는 데 있다. 은행처럼 대출하는 게 아니라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게 그들의 본업이다. 이런 점에서 증권사가 중개 업무에 충실한 것은 칭찬할 일이지 깎아내릴 것은 아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당국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진짜 온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경제나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금융 당국은 이제 내려놓을 것과 챙길 걸 구분해야 한다. 당국이 자본시장 발전에 걸림돌이란 얘기는 이제 그만 들을 때가 됐다는 말이다. ‘은행’은 제도로 끌고 갈 수 있지만 ‘투자은행’은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풀어줘야 비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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