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인수합병·한진해운 법정관리 가능성...“둘 다 살리지 못할 수 있다”

해외 선사·선주들과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자 업계에서는 양대 해운사의 동시 회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세어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은 현대상선. / 사진=뉴스1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해운산업이 좌초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을, 한진해운이 해운동맹 가입을 매조 지을 당시만 해도 “회생이 가까워졌다”는 낙관론이 들려왔었다.

불과 한 달 뒤 상황이 급변했다. 해외 선사·선주들과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자 업계에서는 양대 해운사의 동시 회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세어나오기 시작했다. 둘 중 한 곳이라도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진해운은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제 71-2회 무보증 공모사채를 보유한 채권자를 대상으로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만기를 3개월 연장하는 의안을 가결했다. 총 채권액 1900억원 중 이날 참석액은 1378억6000만원이다.

업계에서는 이날 집회 전부터 “한진해운 채무 재조정이 쉽게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진해운이 지난 2일 열린 사전 설명회에서 채권액 상당 부분에 대한 사전 서면 동의서도 받아뒀고 채권 대부분을 기관투자자가 보유해 가결이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한진해운은 ‘큰 산’을 넘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정작 중요한 용선료 협상이 난관에 빠지며 회생이 불투명해졌다. 한진해운은 지난달 13일 결성된 제3의 글로벌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에 합류해 해운동맹 잔류 조건을 이행했고 현재 외국 선주사들과 용선료 조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 언론을 통해 용선료 협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시스팬(Seaspan)의 게리 왕(Gerry Wang) 회장은 영국의 해운전문 외신 로이드리스트는 인터뷰를 통해 “선박 용선료 인하는 없다”며 한진해운에 빌려준 선박을 회수하는 안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경영진들이 직접 해외 선주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협상이 아닌 막후접촉을 통해 회생안 및 회생 시 보상안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공식적인 스케쥴을 잡고 해외 선주들과 협상을 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며 “다만 해운 회생에 대한 의지가 분명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용선료 인하를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용선료 협상 고비는 넘겼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10일 컨테이너 선주 5곳과 20%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대해 합의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 벌크 선주는 25% 수준에서 합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이번 협상으로 향후 3여년간 지급할 용선료 2조5000억원 중 약 5300억원을 신주 및 장기 채권으로 지급한다. 갚아야 할 뱃삯의 총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꽉 막혀있던 자금줄이 어느 정도 숨통을 틔게 됐다.

문제는 해운동맹 가입 여부다. 당초 한진해운이 포함된 디 얼라이언스 가입을 노렸지만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해운동맹 ‘2M’과 가입 협상을 실시했다. 2M은 세계 1, 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해운동맹이다.

현대상선은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가입 가능성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당초 현대상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혀오던 머스크 등이 협상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사실상 가입에 성공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이 2M 가입에 성공한다 해도, 회생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맞지 않는 다는 분석도 있다. 2M 입장에서는 기울어져 가는 현대상선 가입을 반길만한 동기 요인이 없다. 그럼에도 가입 협상을 개시했다는 것은 향후 인수합병(M&A) 등을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다.

해운전문 컨설팅 회사인 '시인텔리전스'의 라스 옌센 CEO(최고경영자)는 지난달 24일 해운 전문지 '시핑 와치'와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아시아 시장에서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해 몇 년 후에는 현대상선을 인수하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모두 회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이 흘러나온다. 현대상선이 해외 선사에 팔려나가고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빠질 경우, 국내 해운산업이 사실상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진해운 채권단 관계자는 “두 기업이 죽고 사느냐는 협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선주들의 당면과제, 해운 시황 등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해운사가 모두 무너질 경우도 가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내 경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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