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지식 전무한 ‘정피아’ 논란 여전...전문가 “자생력 갖추려면 이사회 힘 강력해야”

대우조선의 2012년부터 2015년 사업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해당년도 대우조선 사외이사의 중요안건 찬성률은 98.91%를 기록했다. / 사진=뉴스1

검찰이 수조원대 분식회계에 깊이 관여한 혐의를 받는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씨에 대해 2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대우조선에서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김씨는 재임기간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2013∼2014년 영업이익 기준으로 1조5342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대우조선은 2013년 4409억원, 2014년 4711억원의 흑자가 난 것으로 공시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이 수년간 조직적으로 손실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탓이 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가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 4년간 184건 안건 중 유보는 단 1%

대기업 사외이사는 일반적으로 대학교수, 변호사, 공인회계사, 퇴직 기업인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제언하고 기업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우조선 사외이사는 5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대우조선이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간 동안 이들의 안건 찬성률은 100%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대우조선 사외이사가 ‘거수기’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본지가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오른 대우조선의 2012년부터 2015년 사업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해당년도 대우조선 사외이사의 중요안건 찬성률은 98.91%를 기록했다.

4년 간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중요의결사항은 총 184건이다. 이 중 유보된 안건은 2013년 ‘H안벽 복지 Complex 신축 승인의 건’과 2015년 ‘삼우중공업 보유 신라금속 주식 인수 승인의 건’ 2건이다.

유보되지 않았지만 사외이사들 중 한명이라도 반대의견을 제시한 안건은 2014년에 ‘부동산 매각 승인의 건(한경택 반대)’, ‘세월호 피해지원 기부금 지급 승인의 건(신광식 반대)’, 2015년에는 ‘ 경영관리단 관리약정 체결 승인의 건(이종구 반대)’ ‘대우조선해양건설에 대한 대여금 지급 승인의 건(이상근 반대)’ 등 7건이었다.

사외이사들은 실적과 직결된 재무제표와 영업보고서에 대해서는 100% 찬성 의견을 냈다. 이 밖에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와 감사보고서도 모두 가결시켰다. 대우조선이 수년에 걸쳐 손실을 숨기고 이익을 부풀리는 동안 사외이사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 사외이사 전문성·독립성 담보돼야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안주했지만 대우조선으로부터 받는 연봉은 매년 늘었다. 2012년 6000만원이었던 사외이사 연봉은 2013년 6100만원, 2014년 6600만원으로 올랐다.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지난해에도 6800만원으로 연봉이 늘었다.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 사외이사진에 정치권 출신 인사와 조선 분야 비전문가들이 소위 ‘낙하산’으로 대거 포함된 탓에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 대우조선이 대우중공업에서 분리 독립한 후 선임된 사외이사 30명 가운데 18명이 정치권 또는 관료 출신이었다. 현재도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과 친박계 유정복 인천시장의 보좌관 출신인 이영배 전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기획조정실장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까지 대우조선 사외이사로 재직하던 이종구 법무법인 광장 고문(현 새누리당 의원)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20대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달에는 자사 사외이사 후보로 조대환 법무법인 대오 고문 변호사를 추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지난 2010년 여권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새누리당 추천으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과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우조선이 존폐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조선업과 관련한 경력이 전무한 이가 사외이사로 추천되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변호사가 전문성과 관계없이 정부 영향력 하의 민간기업에 투입된 ‘정피아’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우조선은 법 자문을 구하기 위한 인사였다고 반박했지만, 부담을 이기지 못한 조 변호사가 자진 사퇴했다.

대기업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시가총액 100위 기업 사업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이사회 안건 찬성률은 99.76%를 기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회사’인 탓에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우조선은 지난 1999년 8월 대우중공업 부문으로 다른 대우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0년 대우조선공업이 대우중공업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법인으로 만들어진 후, 대우조선은 그해 12월 채권단으로부터 1조1700억원의 출자전환을 지원받고 산업은행 자회사가 됐다. 그 후 매각작업이 지지부진하며 15년 간 주인없는 회사로 남아있게 됐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주인없는 회사라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장이 아닌 정부 개입을 막아낼 수 있는 외부 이사진”이라며 “미국 보잉사 역시 대우조선과 마찬가지로 주인 없는 회사지만 강력한 견제력과 전문성을 가진 이사진을 발판삼아 세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과연 그런 이사회가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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