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업계 직장 내 성폭력 매뉴얼 미흡…5월 강화 법 시행 예고에도 사업주는 ‘잘 몰라’

/사진=셔터스톡

최근 직장 내에서 ‘미투(Me too) 바람’이 부는 가운데 대다수 중소기업이 여전히 성폭력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 관련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신고가 어렵다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신고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로 걸려온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2013년 236건에서 2017년 692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뒤늦게 사내 성폭력 대응‧징계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사원 윤리강령에 성희롱 관련 실천 지침을 마련해뒀다. 또 사내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제보 창구인 ‘두드림’을 운영하고 있다.

한샘 성폭력 사태, 미투 운동 등으로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성폭력 방지책을 강화한 기업도 있다. 롯데홈쇼핑은 이달부터 성희롱(성폭력) 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직장 내 성폭력 방지‧대응에 나섰다. 성폭력 발생 시 그에 대한 신속한 조사와 엄정한 처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성폭력 사각지대’로 불린다. 정확한 대응 매뉴얼이 없어 피해 신고가 어렵고, 신고를 해도 고용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탓이다.

소규모 마케팅 기업에서 근무하는 임아무개(26)씨는 “사원 수가 20여명 정도밖에 안 되고,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성희롱으로 느껴지는 발언을 들어본 적도 있지만, 성희롱 대응 매뉴얼 같은 것은 없다”며 “미투운동이 퍼지고 있다지만, 서로를 다 알고 있는 작은 회사에선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겪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분위기 망치는 애’로 취급 받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성폭력 대응책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글이 올라왔다. IT 중견기업 근무자라고 밝힌 작성자는 지난달 블라인드에 “직장 내 성희롱이 너무 심하다.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여직원들한테만 성희롱 경험을 묻는 설문지를 돌렸다. 그런데 설문지에 실명을 밝혀야 했고, 조사하는 당사자들이 성희롱 상습범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가희 한국여성민우회 노동팀 활동가는 “중소기업은 사원 수가 적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어렵다. 선례가 적어 대응 매뉴얼도 미흡하다”며 “특히 사업주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했을 경우, 이를 신고하면 피해자가 고용 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신고도, 해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사내 성폭행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5월부터 성희롱 예방교육 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음에도 중소기업 사업주들은 ‘몰랐다’는 입장을 보였다.

소규모 포장업체를 운영하는 최아무개(61)씨는 “성희롱 교육 매뉴얼이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직까지는 지도점검을 받아본 적 없다”고 말했다. 마케팅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한아무개(52)씨도 “성희롱 교육 매뉴얼에 대해선 잘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 내 성폭력 문제도 점차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고, 정부가 5월까지 개정된 성폭력 교육 매뉴얼을 배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에 있었던 직장 내 성희롱 관련 교육 매뉴얼 자료를 수정해 5월 중 배포할 배포할 예정”이라며 “정부 자료가 배포될 경우 중소기업들은 이를 참고해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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