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완전자급제 전 세계적으로 전무” 반발…일부 통신사 의지 추측도 불거져

14일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 판매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사진=뉴스1

국내 고질적인 통신시장 변화와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대안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자급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업계마다 이견을 보이는데다 실효성 논란이 일면서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동통신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이동통신사가 직접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단말기 판매는 제조사와 판매점이, 통신서비스 가입은 이통사와 대리점이 각각 담당하도록 규정했다.

이어 지난 25일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시행하되 제조사와 대기업의 휴대전화 판매를 제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완전자급제 시행 시 연간 최대 9조5200억원의 가계 통신비가 절감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법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시행되면 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으로 지원하던 비용을 줄이는 대신 저렴한 요금을 내놓게 되고, 제조사들은 단말기 가격 경쟁으로 출고가격을 내릴 것이라는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당장 실업 증가는 물론, 이용자들에게도 별 이익이 없는 법안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대기업이 아닌 영세한 유통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박홍근 의원은 대기업 진입 방지 등 몇 가지 장치를 제안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이 법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까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것 같아 몹시 걱정하고 있다”며 “10월 말 만들어지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서 최적의 답을 찾으면 좋을텐데 갑자기 이렇게 단말기 자급제로 논의가 흘러간 데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유통 업계에서는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한 자료를 내는 것은 물론, 단말기 자급제로 현혹해 국민들을 호도한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낙선운동까지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일단 신중론을 펴고 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6일 “단말기 자급제는 소비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 당사자가 유익한 방향으로 가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3만명에 달하는 유통점의 피해를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 통신사가 단말기 자급제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도 불거지고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단말기 자급제가 갑자기 현안으로 떠오른 것을 놓고 통신사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단말기 자급제가 급부상한 데 대해 특별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이같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한 통신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며 “통신사가 아직 정부가 추진할 여러 가계통신비 절감안을 떠안기 전에 차라리 단말기 자급제를 통해서 절감안에서 해방돼 능동적으로 일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추측이다.

정부 역시 단말기유통법이 이달 일몰되면서 대체 입법안을 생각하다가 시기에 딱 맞게 부상한 단말기 자급제에 꽂힌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새롭게 판을 짜기보다는 시장 안정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점진적인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조사와 통신사는 물론 국회, 유통업계 각 이해관계 주체의 의견이 조금씩 엇갈리면서 단말기 자급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와 통신사는 오는 27일 2차 협상을 갖고 단말기 자급제에 대해 논의한다. 앞서 유통업계는 제조사, 통신사와 각각 한 번씩 협상을 가진 바 있다. 앞으로 유통업계는 제조사, 통신사, 대형유통채널과 논의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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