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오토텍 통상임금 판례 분석…가장 큰 쟁점은 신의칙 인정 여부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앞에서 열린 통상임금 확대 요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4.8.28 /사진=뉴스1

 

기아자동차가 부담할 금액이 최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통상임금 소송 선고일이 ‘원고 목록 보완’을 이유로 두 차례 연기되면서 재계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선고하기 위한 기록을 분석해 거의 결론을 냈고, 판결문도 준비됐다”면서 사실상 법리검토를 끝냈음을 시사했다. 재판부가 어떤 판례를 중심으로 판결문을 작성했을지 살펴봤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400여명은 2011년 10월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간 받았던 연 750% 상당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6869억원으로 이자까지 포함하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소송에서 근로자들이 이긴다면 기아차는 750%에 달하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연장 근무 수당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서 지급해야 한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직원까지 선고결과를 적용할 경우 기아차가 추가 부담할 금액은 3조원에 달한다.

이 소송은 2013년 (주)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유사소송으로 분류된다. 갑을오토텍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김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과 현직 근로자 29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이 함께 선고된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급여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됐다면 명칭과 관계없이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통상임금의 기준을 정립했다. 

 

재판부는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는 임금의 명칭이나 지급주기의 장단 등 형식적 기준에 의해 정할 것이 아니다”면서 “그 임금이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기적’의 의미를 꼭 일반적으로 임금이 지급되는 1개월로 한정하지 않았다. 연 단위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근로자의 주장에 유리한 부분이다. 

 

당시 재판부는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기 위해서 정기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임금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적으로 지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면서 “정기상여금과 같이 일정한 주기로 지급되는 임금의 경우 단지 그 지급주기가 1개월을 넘는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률적’의 의미에 대해서는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휴직자나 복직자 또는 징계대상자와 같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람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근로자들은 통상임금을 지급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고정성은 논쟁이 있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어느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하루를 근로하고 다음날 퇴직하더라도 그 하루의 대가로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을 고정성을 갖춘 임금이라고 정의했다. 이 때문에 특정 기간 동안 일정 시간 이상 근무를 한 근로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식의 상여금 세칙이 마련돼 있는지가 법원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앞서 법원은 현대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두 달 동안 15일 미만을 근무한 근로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세칙이 있었다는 이유로 ​사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더 큰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다. 통상임금의 전제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더라도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이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되더라도 기업의 추가 부담이 너무 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맞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때에는 근로자 측의 통상임금 산입 주장을 신의칙으로 배척할 수 있도록 했다.


신의칙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으로 알려진 35개 기업(종업원 450인 이상) 중 23개 기업이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으로 ‘소급지급 관련 신의칙 인정 여부(65.7%)’라고 응답했다.


반면 신의칙의 과도한 적용을 견제하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은 “신의칙을 적용해 실정법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최후수단으로 법의 정신이나 입법자의 결단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안에 불과하다”면서 “신의칙을 내세워 사용자의 그릇된 신뢰를 권리자인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우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근로자가 받았어야 할 임금을 예상외의 이익으로 취급해 이를 되찾는 것을 정의와 형평 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의 관념에 반한다”면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그런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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