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김상조의 엄정한 공권력 행사 보고 싶다…경제민주주의 위한 개헌해야”

13일 본지와 인터뷰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삼성가 이재용 문제는 곧 이부진, 이서현 문제라며 이들 역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최형균 기자

(⑤ 곽노현 前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에 이어)

함께 활동했던 장하성, 김상조 교수가 J노믹스 핵심전선에 섰다.

장하성‧김상조 두 사람의 진짜 실력과 공은 경제개혁연대를 운영하며 30대 재벌일가들의 갖가지 회사이익편취와 지배권강화시도를 잡아낸 데 있다. 전문성 높은 자료조사를 통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공정위, 국세청, 금감원, 검찰 등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 두 사람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갔다. 그동안 그렇게도 원했던 올바른 방식의 규제권한‧사법권한을 쓸 수 있게 됐다. 재벌들이 감히 불법이나 편법 동원을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엄정한 공권력 행사를 보고 싶다.

경제민주화 기수였던 이들이 전면에 선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전망을 어떻게 보나?

경제를 바라보는 측면이 다양한 만큼 경제민주주의 개념 역시 편차가 크다. 경제민주주의는 완성된 형태가 없는 일종의 규제적 이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장하성‧김상조 두 분의 정책적 입장은 주주자본주의와 공정거래질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은 주주대표소송, 기타 주주권과 사외이사제를 강화해서 (재벌총수에 대한) 견제 기능을 확보하자고 주장해왔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펀드운영자 등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덧붙여 ‘세 박자’로 재벌개혁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론에 충실하자는 얘기라 근본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게 장점이다. 다만 이들 정책의 실효성은 과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들 정책은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이사제 등 과감한 경영참여권과 이익균점권 부여 같은 강력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최대주주 역할을 강화해 삼성 등 재벌기업을 통제해야 한다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입장을 지지하나?

일반기관투자가와 달리 국민연금의 경우 국민경제와 보통사람을 위한 강력한 사회책임 스튜어드십이 필요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사건에서 보듯이 국민연금은 대부분 재벌대기업에서 계열사주주를 통으로 빼고 나면 이미 최대주주나 2대주주다. 얼마든지 캐스팅 보트 행사 등 실효적인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총수일가 소유지분이 워낙 작지 않나. 반면 국민연금의 투자여력은 앞으로 수십 년간 더 늘어난다. 즉 한국사회는 마음만 먹으면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데 용이한 내부지분구조와 강력한 내부감시자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삼성가에서 이부진, 이서현 등 다른 3세도 호텔신라와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됐다. 두 사람의 주식자산가치도 2조원 안팎을 넘나든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은 온통 이재용 부회장으로 쏠려있다. 이부진, 이서현 두 사람에 대한 ‘물려주기’를 어떻게 보나?

‘이재용 문제’는 동시에 ‘이부진, 이서현 문제’이기도 하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지배지분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이재용 3, 세 딸 합계 3(딸 1인당 1)의 비율로 편법 상속됐다. 사망한 딸의 몫은 바로 삼성문화재단에 편입됐다. 그 지분까지 합치면 세 딸의 보유재산 가치는 이재용의 보유재산 가치와 똑같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재용만 붙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부진, 이서현 두 자매가 ‘이재용 스캔들’의 말없는 최대 수혜자다. 이들의 재산 중 가장 큰 덩치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지분이다. 시가로 각각 2조원을 훌쩍 넘는다. 앞으로도 세 남매가 힘을 합치면 그룹경영권을 한 대(4세 승계)를 더 이어가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이 두 사람도 당연히 일확천금 부당이득에 대해 최소한 오빠만큼은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인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 사진=최형균 기자

최근 “시민주도 개헌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며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위한 사회경제적 강화 개헌”을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해결하는 과제보다 앞서 내세웠다.

개헌을 한다면 경제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개헌이 되어야 바람직하다. 지난겨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을 낫게 바꿔달라는 99%의 절박한 호소가 도처에서 울려퍼졌다.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경제력 집중해소와 균형발전, 적정분배, 독과점방지라는 정책목표를 ‘성장과 효율’ 이상으로 중요하게 설정해야 하다.

효율성은 시장경제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특정분배구조 아래서 유효수효의 효율성이다. 99%가 빈곤한 상황에서 효율과 성장을 추구한들 그 효율과 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이겠는가. 만약 분배구조를 개선한다면 그에 맞는 효율적인 경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투자금융무역의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 부와 소득의 양극화가 동시에 경제 환경으로 직면해있다. 이 상황에서 양극화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과감한 분배개선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배정의와 경제효율 모두를 악화시킬 뿐이다.

사회경제적 강화 개헌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경제문제는 시장에 맡기면 되기 때문에 가급적 헌법사항이 아닌 게 좋다’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예에 따라 비교적 다양한 경제조항을 두고 있다. 여기에 보태서 금융, 투자, 재정, 분배, 사회적 경제 등과 관련해 지난 몇 십 년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반영할 만한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는 이미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4가지 근거가 있다. 경제의 균형발전, 소득의 적정분배, 독과점 방지, 경제주체 간 경제력 조화다. 보통 4번째만 경제민주화로 좁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4가지 근거 전체를 경제민주주의의 과제이자 최소한의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6‧10 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새 시대 과제로 경제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정확한 과제설정이다. 우리는 경제민주주의를 너무 좁게 재벌문제로만 본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의 극복, 1% 특권경제 극복, 렌트경제 극복이 경제민주주의의 1차 과제 아니겠나. 그간 금융, 투자, 생산, 분배 모두를 관치에서 시장으로 넘겨왔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경제문제에) 작동할 여지가 더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소수에게 부가 집중된 형태의 경제체제가 돼버렸다.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넘어서 중요한 경제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보통사람 목소리가 크게 반영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참여해야 한다. 노동의 소유경영참여와 디지털경제 접근권 강화 등 21세기적 조건에 맞는 개혁안들이 실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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