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비정규직 해결에 최대 역점을…대통령은 장기 과제, 총리에게 현안 해결 맡겨야"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 사진=시사저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단행한 청와대 조직 개편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활이었다. 정부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참여정부 시절 처음 도입됐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폐지됐다.

 

문 대통령이 정책 컨트롤타워 격인 청와대 정책실장을 부활시키자 과거 참여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문 대통령이 차기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과거 참여정부 정책 추진 방식을 상당 부분 차용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첫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17일 오후 기자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부활한 것은 잘한 일”이라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꼭 필요한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당히 중요한 자리임에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역할이 축소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완전히 폐지돼 상당히 안타까웠다”면서 한 말이다. 

 

그는 “경제수석이나 사회수석이라는 자리가 정책실장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지만 (수석은) 단기 과제에 급급할 수밖에 없어 장기과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면서 “정부 부처마다 칸막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 만큼 정부 정책의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정책실장은 굉장히 중요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 명예교수는 문 대통령이 향후 국가 어젠더 등 장기적인 정책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은 12개 대통령 위원회가 참여하는 국정과제회의는 열심히 참석했고 격려해주며 힘을 실어줬다”면서 “하지만 국무회의는 국무총리에게 맡기고 장기간 불참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 명예교수는 “국무회의는 장기적인 정책 과제보다는 그때그때 현안을 결정하고 지나가는 자리인만큼 총리에게 맡기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장기과제에 집중하고 총리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다보니 총리는 총리대로 (일하는 데) 신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도 새 정부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장기 정책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향후 힘을 쏟아야할 경제 분야 정책에 대해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 등을 꼽았다. 이 명예교수는 “참여정부 때 재벌개혁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부족했고, 비정규직 부분에서도 불평등을 완화시키려고 했지만 성과가 잘 나오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차기 정부가 참여정부의 한계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명예교수는 새 정부의 개혁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권 후 1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 정책은 정부가) 힘이 있을 때 해야 한다”면서 “과거 참여정부 시절 때도 전반기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의 언급처럼 새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재벌개혁에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예상은 인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17일 청와대는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재벌개혁감시단장 출신으로, 평소 재벌개혁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일자리수석 등 새 정부에서 경제 관련 정책을 주도할 인물들은 아직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정책실장 등은 경제부총리 등 내각 인사와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세트로 짝을 맞춰서 발표하기 위해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면서 “신임 경제부총리는 개혁적인 성향 인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 부문 활성을 추진하기 위해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 1호 업무로 위원회 구성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 명예교수는 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처에 맡겨둬서는 각종 개혁 정책이 표류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 명예교수는 “위원회 방식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데) 굉장히 좋은 방식”이라면서 “부처에만 맡기면 개혁 정책을 잘 안하려는 경향이 있고, 부처마다 서로 걸쳐 있는 영역들이 많기 때문에 범 부처 차원에서 정책을 추진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참여정부를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난하는 데 대해서는 온당치 않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를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은)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깎아내리기일 뿐”이라면서 토론과 설득을 통해 정책을 풀어나가는 위원회 방식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 명예교수는 ​문 대통령과는 대선 때 대구에 내려왔을 때 두어번 보기는 했지만 워낙 바쁜 분이다 보니 자주 보지 못했고 따로 연락도 안 했다”면서도 “(문 대통령이) 정의감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많고, 책도 많이 읽어서 판단력도 좋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자신의 역할론에 대해서는 “이미 (나는) 흘러간 사람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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