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쉬운 길에 안주"…규제완화·특허 보호로 4차 산업혁명 대비해야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 회장은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는 2020년까지도 못 버틴다”라고 일갈했다.

 

19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회의실에서는 특허 침해 행위를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첫 번째 준비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배 회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각 당 의원실과 특허청, 발명진흥협회 관계자들이 모였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모임에서 배 회장과 관계자들은 현행 특허 관련 법규에 대한 열띤 토론을 통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관계자들은 준비 모임에서 논의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현 특허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모임을 주도한 배재광 회장은 상반기 내로 특허 침해 피해기업, 벤처 업계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내용들을 발표하려 하고 있다.

 

1세대 벤처기업가인 배 회장은 자신이 개발하고 출원한 모바일 지로결제 서비스 특허를 두고 지난해부터 카카오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는 특허권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과 정부규제가 4차 산업혁명을 앞둔 한국 산업계의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사저널 이코노미는 첫 준비 모임을 마친 배 회장을 만났다.

 

특허침해 입증책임 전환·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필요해

 

배재광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 특허 제도가 허술하기 때문에 한국 대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도 국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보유한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 회장이 제기한 현행 특허 소송제도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입증 책임과 배상기준이다. 현재 국내법 상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한 입증과 손해배상 규모 산정 책임이 모두 특허권자에게 있다.

 

배 회장은 미국에서는 특허 침해 소송이 제기되면 피의자가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해야 하고 고의적으로 증거를 숨기면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에 따라 해당 침해에 대해 패소하게 된다“2011년 애플과 삼성전자 특허 침해 소송이 이런 경우라고 말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출시하지 않은 미공개 모바일 제품들에 대한 증거 제출을 거부했다.

 

특허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이런 선진국 사례를 근거로 피의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손해배상의 경우 한국 법원에선 청구인이 실질적 손해배상 규모를 산정하게 하고 있다. 실질적 손해란 특허 침해 행위를 저지른 상대가 해당 특허로 직접 얻은 이익을 뜻한다. 배 회장은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특허권자가 직접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침해 행위자가 직접 특허를 이용해 물건을 몇 개 팔았다고 공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손해액을 계산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특허권자가 입은 손해 전체를 배상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허권자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기업은 특허무효 판결도 청구할 수 있다. 특허청의 특허무효판결 비율은 약 70%로 알려졌다. 배 회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특허청이 직접 등록한 특허에 대해 무효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배재광 회장이 19일 열린 '특허 보호를 위한 만민공동회 준비모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e

카카오와 특허 소송 장기화, “한국 대기업은 혁신 멈추고 안주해

 

배재광 회장이 특허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 계기는 카카오가 자신이 준비하던 서비스와 유사한 카카오 청구서를 지난해 2월 출시한 것이었다. 그는 현재 카카오와 두 번째 소송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배 회장은 지난해 카카오를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광주지방법원이 이 신청을 기각한 뒤 배 회장은 항소했다. 현재 카카오는 해당 특허에 대해 특허청에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 상태이다.

 

배 회장은 지난해 1심 소송 과정에서 카카오 측 대리인이 해당 특허와 달리 카카오청구서 정보 전송 경로는 3가지라며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정은 카카오 청구서가 6가지 경로를 통해 전송되는 기존 특허 방식 상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특허는 QR코드를 이용해 모바일 기기에서 공공요금 지로와 납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MBPP(모바일 지로 및 고지납부) 방식을 담고 있다. MBPP 방식은 20107월 국내 특허(10-0973713)로 등록됐다.

 

배 회장은 카카오가 이 특허에 대해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해 시간을 끌고 있다가처분신청은 무효심판 이후가 돼서야 결말이 날 것이라고 추측했다.

 

카카오는 웹 포털 기업인 다음과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업체 카카오가 합병해 만들어진 회사이다. 다음과 카카오는 모두 벤처 창업 기업에서 출발했다. 배 회장은 카카오는 모바일 시대에 대표적인 혁신기업이었다면서도 혁신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끊임없는 투자도 필요하고 그 과정이 어렵다보니 어느 순간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카카오 서비스에 대해 자체 플랫폼을 중국이나 해외로 확장해 서비스 개발사들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플랫폼 내에서 직접 서비스하면서 포식자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 인허가 사업인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하는 것부터 혁신과 멀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IMF로 기회 잡은 한국 벤처 1세대, 산업화 패러다임 버리고 혁신 생태계 조성 희망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 회장은 온라인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 창업 멤버이자 현직 스타트업 기업가이다. 그는 벤처법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법률상담도 하고 있다.

 

배 회장은 1994년부터 인터넷을 하면서 미국 실리콘밸리 사례를 접했고 창업을 통한 혁신이 한국 산업 발전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1996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권유로 벤처 업계에 본격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다른 운동권 선배들은 인권 변호사의 길을 갔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면서 당시 우리나라는 흔히 아는 재벌 대기업만 존재하던 사회였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작고 혁신적인 기업이 우리 경제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30대 초반 엔씨소프트 성공으로 얻은 수익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데 쓰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벤처 육성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처럼 창업 붐이 올 때까지 오랫동안 고생하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오면서 갑자기 기회가 생겼다면서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련한 패러다임으로 한정된 자원을 특정 기업에 몰아주기 위해 인허가나 대기업 지원으로 다른 기업은 사업을 못하게 하는 게 주된 시스템이었고 IMF는 그 시스템에 위기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회장은 그때 그걸 완전히 고쳤어야 하는데 여전히 예전 시스템이 남아있어 몇 개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허는 중소기업이나 창업가도 대기업에 이 될 수 있는 권리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원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인허가 제도를 없애고 규제를 완화해 시장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회장은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가상현실 같은 기술은 벤처 초기인 90년대에 이미 화제를 모았을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기술 개발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은 초융합과 초연결로 이런 기술이 하나로 연결되게 하는 현상으로 법과 규제를 완화해 칸막이를 없애고 산업계가 혁신하도록 해야 한다특허권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주식회사가 아니어도 벤처 캐피털(VC)을 설립하도록 하면 돈과 기술, 사람이 혁신을 위해 모이는 벤처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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