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경쟁력‧조직력 이미 정점…“총수 구속 장기화 되면 영향 나타날 수도”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사진=뉴스1

총수 구속이란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삼성전자 호(號)는 순탄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난리통에 출시한 스마트폰 신제품도 나오자마자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시달린 4개월 동안 오너리스크는 없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년 12월 6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때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부터 조사위원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심지어 “능력 있는 다른 사람에게 CEO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어떠냐”는 모욕적인 질문도 이어졌다.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사실상 오너리스크 영향 하에 놓였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불러다니며 조사를 받았고 결국 2월 17일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오너 부재상황에 놓였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3일 삼성전자는 207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대비 0.72% 포인트 하락했지만 이재용 부회장 구속 전에 비해 여전히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서 삼성전자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크게 4가지로 꼽고 있다. 우선 그동안 회사 내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적 역할을 맡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삼성전자가 오너 구속에도 승승장구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 경영 실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사실 그것이 정상적인 회사의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후 삼성은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재편돼왔지만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가 된 지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책임경영을 펼치려던 차에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셈이다. 총수 구속을 경험한 그룹사 관계자는 “그동안 구속됐던 그룹 오너들은 이미 경영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고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막 시작하는 오너”라며 “구속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권오현‧윤부근‧신종균 대표이사 ‘국정농단 무풍지대’

두 번째는 오랜 세월을 거쳐 구축된 삼성전자의 조직력이 그만큼 굳건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들이 모바일‧가전‧반도체 부문에 대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선대인 이건희 회장과 함께 각 사업부를 일궈온 원조 삼성맨들로, 자신들이 맡은 부문에 대한 전문 지식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재용 부회장의 관여 없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총괄해오던 이들인데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단 1명도 휘말리지 않았다. 미래전략실에서 시작된 불길이 다른 사업부로는 전혀 번지지 않은 것이다. CEO 휘하의 직원들도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제품 경쟁력이 정점에 와있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오너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맏형 반도체 부문은 분기 영업이익 1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낸드플래시와 D램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두 부문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경쟁상대가 없다. 모바일 부문 역시 갤럭시노트7 사태를 딛고 갤럭시S8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았지만 시장 반응을 보면 이미 다른 경쟁사들 제품을 기선 제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수익과 주가를 떠받치는 외국인들은 이재용 부회장 행보보다 삼성전자의 제품경쟁력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아직 이재용 부회장 구속 기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오너리스크가 없는 까닭 중 하나다. 이는 다시 말해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장기화되고 그룹 리더십 부재 상황이 이어지면 큰돈이 들어가는 투자가 힘들어 슬슬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사조직 전문가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오너리스크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현 상황에선 삼성전자가 새로운 사업 영역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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