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철강산업 보고서 공개…수입재 방어 위한 제도 개선 마련도 시급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섭씨 1500도 뜨거운 쇳물이 나오는 용광로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국내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에 신음하고 있다. 철강업계도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생산시설 통폐합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직접 나서 경영상태가 어려운 중소형 업체들을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수입철강재 방어를 위한 제도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가 한은 광주전남본부 및 외부 전문가와 공동연구를 해 지난 16일 공개한 ‘글로벌 공급 과잉기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조강(粗鋼·제강로에서 만든 가공 안된 강철)능력은 중국의 활황을 계기로 대규모 설비증설이 이뤄져 2015년 기준 23억톤으로 늘어났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매년 1억톤씩 증가한 수치다.

반면 과잉 생산된 조강은 2000년대 중반 2~3억톤에서 2015년 8억7000만톤으로 급증했다. 세계 경제 침체로 철강소비 증가율이 둔화됨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철강업체의 설비가동률과 영업이익률이 하락하고 수출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열연가격은 2011년 2월 톤당 790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에는 톤당 280달러로 64%나 하락했다. 철강가격이 이렇게 장기간 급속도로 하락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국제철강시장을 주도하는 중국의 공급과잉과 저가 수출전략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철강가격 하락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철강업체의 가동률이 하락하고 영업이익률은 급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사의 영업이익률은 2005년 12.5%로 최고점을 기록하다가 이후 하락해 2015년에는 –0.1%로 돌아섰다.

세계적 공급과잉의 영향으로 수출경쟁이 심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입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공격적인 수출전략과 수입재 방어의 강도가 어느 때보다 세지고 그 수단 또한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주요 철강수입국은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민간이 주도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순조로운 합병을 위한 법률적 지원과 기업의 수출기회 확대를 위한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철강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성장둔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의 핵심사업으로 ‘공급측 개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석탄과 함께 철강산업을 공급측 개혁 대상 산업으로 지정하고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해당 공급측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 바오산과 우한강철의 합병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철강업계는 2000년대 초반 파산과 통합을 거치면서 ‘빅3’로 재편됐다. 이후 셰일가스를 활용한 제철소 건설에 자금지원과 세제혜택을 제공해 업체 경쟁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무역상대국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4열연 공장. /사진=포스코

 

국내 철강산업은 1970년대 이후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수요산업과의 동반성장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오랜 성장기가 끝나고 공급과잉과 수요부진이 지속하는 성숙침체기에 진입했다.

중국의 저가 수출과 중국산 저가 자재수입 급증으로 철강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고 있지만 이미 집행된 대규모 투자비와 시장점유율 문제 등으로 업계가 적극적으로 구조재편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구조개편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과거 일본의 구조재편은 사전에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 이견 중재 및 법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정부는 현재의 철강 공급과잉이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산업 전체 입장에서 원가경쟁력 우위 업체를 중심으로 구조재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인수합병(M&A)을 강조했다. 글로벌 철강주도국들이 설비감축과 함께 M&A를 통한 대형화로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도 경쟁력이 취약해 경영상태가 어려운 중소형 업체들을 통폐합해 경쟁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수입재 방어를 위한 제도 개선과 통상마찰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철강산업의 수입침투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총 수입량 2200만톤 중 약 60%가 중국재인 상황이다. 이처럼 중국산 저가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되고 있는 것은 한국 철강시장이 수입재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노출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한국 철강 수출은 세계 곳곳에서 반덤핑관세를 부과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국산철강재 우선구매제((Buy Korea) 도입과 수입재에 대한 철저한 사전 감시관리제도를 통한 수입침투율 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도 우선구매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제위기로 산업경쟁력 약화의 우려가 증가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자국산 보호 및 육성, 수입억제 등 보호무역 차원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수출 비중이 높고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국산 구매우선제도 도입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물론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수는 없다”며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자국산 우선구매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세계 각국의 철강산업 보호조치가 강화되는 추세에 있는 만큼 민간, 정부 및 정치권 등에서 다양한 대화채널을 상시 가동해 통상마찰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