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지난 연말 광화문에서 지인들과 송년회를 겸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촌으로 향했다. 처음 발길을 들여놓은 곳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바로 옆에 위치한 금천교시장이다. 본가가 이 근처라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졸업하고 대학원 준비할 때까지 종로도서관에 다니면서 무수히 많이 지나친 길이다.

기억 속 금천교 시장은 노점에서 기름떡볶이를 만들면서 동네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생선가게에서 아침마다 생선을 펼쳐놓고 물청소하는 아저씨, 가게에서 채소를 다듬는 아주머니, 허름한 순댓국밥집 등 동네 주민이 살아가는 장소였다. 오랜만에 찾은 금천교시장, 세칭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는 기억 속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동네 주민들이 장을 보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장은 사라졌다. 휘황찬란한 불빛의 술집과 음식점이 들어섰다. 유행 좇는 젊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거닐었다. 그런 공간이 된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 무수히 기사화되었지만 실감하지 못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정의는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상업 및 주거지역으로 바뀌면서 기존 저소득 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지역을 자연스럽게 재개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다만 임대료와 권리금이 상승해 이를 버티지 못하는 원주민이 먼저 이주하고, 높아진 임대료와 권리금에 상응하여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볼 때 활성화된 상권도 다시 힘들어지는 결과가 야기된다. 후자의 대표적 예가 2000년대 개성 강한 소규모 매장들로 높은 인기를 끌었던 가로수길이 높아진 임대료와 권리금으로 인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을 버틸 수 있는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가 입주한 일이다.

낙후된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 데는 크게 두 방법이 있다. 하나는 피맛골과 종로1가처럼 재개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술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재개발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방법인데 반해 젠트리피케이션은 많은 경우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두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천편일률적인 고층 빌딩 일색인 재개발보다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 반면 새로 투자자와 소비자가 유입되면서 건축물의 매매가격, 임대료, 권리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이 탓에 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의 왜곡이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매매 수수료를 노리는 단기 부동산이나 권리금 인상을 노리는 단기 영업자들이다. 이러한 활동이 누적되면서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만 들어오면서 거리가 개성을 잃게 되면서 한때 활성화되었던 상권이 다시 활력을 잃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2000년대 초반 유행을 주도하다가 그 지위를 상실하고 한산해진 압구정 로데오 거리다. 지나친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지역에 활력이 아니라 그나마 존재하던 지역적 활력마저 상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시장의 왜곡을 가져오는 권리금 혹은 부동산 매매 수수료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권리금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생겼지만, 현행 권리금은 명확한 경제적 근거 없이 건물에 입주해서 영업을 하는 사람이 누리는 차익이다.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리는 영업장에 입주한다고 해서 새롭게 입주하는 상인이 그 전과 동일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건물에 음식점이 입주해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데, 그것이 단순히 위치가 좋아서인지, 요리사의 솜씨가 좋아서인지, 무언가 특별한 영업 기법이 있는 것인지 그 영업장을 새롭게 임대하는 사람으로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또 중개사 역시 이 과정에서 수익을 얻기 때문에 이 현상을 방조하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즉, 권리금과 높은 매매수수료가 존재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종의 정보비대칭 상황이다.

정보비대칭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레몬 마켓처럼 시장이 붕괴하기도 한다. 시장 붕괴는 그나마 시장에 존재하던 신뢰와 가능성마저 잃어버리는 탓에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사태다.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임대인이 약자일 때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시장의 작동과 가격 시스템을 통한 정보 전달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안타까워하고 생활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원주민을 안타가워하기 이전에, 시장의 구조를 왜곡시키는 현행 권리금과 부동산 매매 수수료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구도심의 슬럼화를 막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오히려 그 슬럼화를 장기적으로 조장하는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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