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 맞벌이 부부에겐 부담일 수도"
"해외출장 잦은 배우자 있으면 노동시간 단축 더 '절실'"
"대기업도 대체인력 충원 소극적···육아제도 '무용지물'"

아빠와 등원하는 어린이 / 사진=연합뉴스
아빠와 등원하는 어린이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정부와 여당이 주 4.5일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육아를 하는 맞벌이 부부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선 근무 일수를 줄이는 것 보다 하루하루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출근이 늦거나 퇴근이 빨라야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국정과제엔 그간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노동 공약으로 강조해 왔던 주4.5일제가 포함됐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같은 달 24일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꾸리고 노사정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들은 해당 정책에 별다른 공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 4.5일제로 노동시간이 일부 줄어든다 하더라도 양육에 대한 부담은 거의 줄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맞벌이 부부인 A씨는 “주 4.5일제를 해도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에겐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라면서 “학교나 보육시설도 금요일에 일찍 끝나면 결국 양육하는 부모들은 금요일 점심 이후부터 아이를 돌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말에도 아이와 뭘 하며 지낼 것인지 매번 고민이 큰데, 금요일 오후부터 이 생각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면 오히려 부담이 더 늘어나는 것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금요일 오후에 일을 하더라도 매일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단 목소리가 많다. 

또 다른 맞벌이 부부 B씨는 “부부 중 해외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진 배우자가 있는 경우엔 노동시간 단축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라면서 “남편이 출장 나가면 아이 등하원은 오롯이 내 몫이 되는데, 일을 길게 하면 아이를 아예 돌보기가 어렵다”라고 했다.  

이어 “늘봄학교(초등학생들을 위한 정규 수업 외 돌봄 및 교육 프로그램)도 문제다. 이 제도가 도입될 때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처럼, 수업 시간 이후 아이들이 학교에 남더라도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라면서 “이게 마음에 걸려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또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꼬집었다.    

정부도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임금 감소 없이 하루 1시간씩 노동시간을 줄여주면 월 30만원씩 최대 1년까지 지원하는 ‘10시 출근제’ 사업이 내년에 시행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을 고려한 안이다. 더불어 육아휴직자 대체인력 채용에 따른 사업주 지원금은 현행 월 120만원에서 최대 140만원까지,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분담하는 노동자 지원금은 현행 월 20만원에서 최대 60만원까지로 오른다. 

하지만 정부의 안이 제대로 효과를 낼지 미지수란 의견도 나온다. 여러 육아 관련 제도를 시행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원인 맞벌이 부부 C씨는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제도 같은 것을 신청하지 않더라도 유연근무제를 통해 아이를 어린이집, 혹은 학교에 보내고 데리고 오는 것이 원칙적으론 가능하다”라면서 “하지만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경영 상황은 더 나아도 마찬가지로 인력 충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 특히 수익을 잘 내지 못하는 부서인 경우 더욱 그렇다”라면서 “대체인력이 없으면 육아를 위한 여러 제도들도 결국 무용지물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결국 기업이 당장의 성과보단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해 노동시간을 줄이는데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저출산으로 인해 내수시장이 축소되면 기업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장이 막힐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단 것이다.

C씨는 “무엇보다 기업이 바뀌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라면서 “더불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단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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