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명 매입 4115건, 6639억 규모
전세금 끼고 매입한 ‘무자본 갭투자’ 의혹
관리 사각지대 속 세입자 피해 우려 확산

서울의 한 빌라 밀집지역. /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빌라 밀집지역.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최근 6년간 주택 매수 상위 10명이 4000채가 넘는 빌라와 다세대 주택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 자본 없이 세입자의 전세금을 끼고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 가능성이 높아 자금 경색 시 대규모 전세사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아파트,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등 주택 매수 건수 상위 1000명(개인 기준)이 3만7196건의 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매수 금액을 다 합치면 4조3406억750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상위 10명의 매입 건수는 4115건으로 매수 금액은 6639억원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411채, 금액은 660억원에 달한다. 고가 아파트 거래도 일부 포함됐으나 대다수는 평균 매입가 1억6000만원대의 시세가 낮은 빌라였다.

조사 기간 동안 개인별 매입 현황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주택을 사들인 개인은 794건을 매입했고, 매수 금액은 1160억6100만원에 달했다. 이어 693건(1082억900만원), 666건(1074억4200만원), 499건(597억2500만원), 318건(482억8900만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일부 사례에서는 30건만 매입했음에도 총액이 498억4900만원에 달해 건당 평균 16억6100만원으로 고가 주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경우도 확인됐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거래가 정상적인 경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임대료 수입으로는 수십억원대 보유세조차 감당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보증금을 끼고 매입하는 갭투자 방식일 가능성이 크며 자금 흐름이 끊기는 순간 다수의 세입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6·27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1주택자도 기존 주택 처분 조건을 달아야 대출을 허용하는 등 갭투자 차단책을 내놨다. 또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막았다. 신규 투기에 대한 차단 효과는 있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미 확보한 물량에는 적용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특히 저가 빌라나 지방 다세대 주택은 규제 영향이 거의 없어 여전히 소액 자본으로 갭투자가 가능하다. 전세보증 강화책 또한 임대사업자의 자기자본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돼 선량한 임대사업자까지 경매로 내몰아 오히려 전세사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관리 장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개인별 다주택 취득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최소한 다주택자 등록제 등 실태 관리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만 강화하는 방식은 풍선효과를 낳을 뿐 투기 억제에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특정 개인이 수백채씩 주택을 매입하는 상황을 방치하면 전세사기 위험은 언제든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입자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금융 규제뿐 아니라 거래 단계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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