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차 입찰, 남부발전 단독 낙찰 ‘흉작’
환율연동·물량 차입제도 등 보완책 도입
포스코 사실상 참여 확정, SK 도전 주목
단가·공급망 리스크 여전···정책 신뢰도 시험대

/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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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정부가 주도하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CHPS) 제도가 두 번째 입찰을 맞는다. 26일 입찰자 등록이 마감되면서 지난해와 달리 민간 기업들의 실질적 참여 여부가 시장의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CHPS는 수소·암모니아 연료 발전사업자에게 한국전력이 전력을 장기 구매 보장해주는 제도다. 석탄 연료의 20%를 무탄소 연료인 암모니아로 대체하는 ‘혼소 발전’도 청정수소 발전으로 인정된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LNG·암모니아 혼소 발전 비중을 2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암모니아·수소 기반 발전량은 2030년 15.5TWh, 2038년 43.9TWh까지 증가해 전체 발전 비중의 6.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 흥행 실패한 1차 입찰···조건 손질해 재도전

전력거래소는 이번 2차 입찰에서 연간 3000GWh 규모를 대상으로 경쟁을 벌인다. 낙찰자는 2029년부터 발전을 개시해 15년간 계약을 수행하게 된다. 초기사업자에게는 최대 1년의 유예기간이 허용된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첫 CHPS 입찰은 사실상 흉작이었다. 남부발전만이 낙찰자로 선정됐고, 전체 물량 6500GWh 중 계약된 것은 750GWh(11.5%)에 불과했다. 남부발전은 삼척빛드림본부 1호기에 암모니아를 혼소하는 방식으로 입찰에 성공했지만, 민간 기업은 사실상 불참했다. 

입찰에 응한 민간 기업은 SK이노베이션 E&S 한 곳뿐이었고 높은 발전 단가 때문에 탈락했다. 업계에서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시장 설계가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력거래소와 15년짜리 장기 계약을 체결해야 하지만 발전기 이용률은 보장되지 않고 정산도 원화 기준만 적용돼 환율 리스크가 고스란히 사업자 부담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이용률을 보장받지 못하면 수요량 산출이 불가능하다”며 “원화 계약까지 겹쳐 환율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니 사업성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청정수소·암모니아 발전 단가는 화석연료 대비 3~5배 이상 높은데 발전사들이 적자를 감수하며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보조금과 상한선 조정을 통해 사업성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조건을 손질했다. 우선 환율연동 정산제도를 도입, 과거에는 원화로만 고정 가격을 받다 보니 환율이 오르면 사업자가 손실을 떠안아야 했던 구조를 개선했다. 이제는 정산 시점 환율을 반영해 외화로 장기 계약을 맺은 사업자의 위험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또 ‘물량 차입제도’를 새로 만들어 당장 공급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다음 해 몫을 미리 당겨 쓸 수 있게 했다. 

한국남부발전 청정수소 기반 전력 생산 개념도. / 사진=한국남부발전
한국남부발전 청정수소 기반 전력 생산 개념도. / 사진=한국남부발전

◇ 포스코는 사실상 확정···SK 재도전?

관심은 민간 참여 여부로 쏠린다. 수소 산업의 구조적 약점은 ‘쓸 곳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발전 시장이 열리면 대규모 수요처가 확보돼 생태계 구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사실상 참여를 확정했다. 회사는 전날 인천 LNG 복합발전소 3·4호기를 수소 혼소 발전소로 교체하기 위해 1조6351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가스터빈 2기와 스팀터빈 1기를 포함한 신규 설비를 2030년 말까지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계약 기간 15년에 맞춘 사업계획을 확정적으로 제시한 만큼 업계에서는 사실상 이번 2차 입찰 참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 참여는 변수다. 회사는 탄소포집(CCS) 기술을 접목해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들여오는 저탄소 LNG 일부를 블루수소로 전환, 국내 발전 시장에 공급하는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지난해 인천 액화수소플랜트를 준공하고 전국 충전소를 확충하는 등 모빌리티용에서 발전용으로 영역을 넓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2차 CHPS 입찰 등록은 이날 마감된다. 제안서 제출 기한은 10월 17일이다. 사업자들은 이때까지 발전 설비 규모, 연료 조달 계획, 투자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담은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심사를 거쳐 최종 낙찰자가 11월에 발표된다. 현재 업계는 연료 공급 계약과 금융 구조, 설비 투자 계획을 막판까지 조율하며 준비에 나서고 있다.

수소업계에선 이번 2차 입찰이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수소업계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것도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소가 ‘브리지 전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최근 정책이 다소 힘이 빠진 분위기인데, 제도적으로 수소에도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업 여건이 여전히 녹록지 않은 만큼 추가 제도 개선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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