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환경단체 “석포제련소 폐쇄 외 대안 없다” 압박 고조
대선 공약 ‘낙동강 살리기’와 맞물려 국감 쟁점 부상
민주당·대통령실 “총수 줄소환 지양” 속 채택 여부 안갯속

장형진 영풍 고문. / 사진=영풍
장형진 영풍 고문. / 사진=영풍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낙동강 상류 환경오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또다시 국회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장형진 영풍 고문(전 석포제련소 대표이사)이 국감 증인석에 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실이 ‘재벌 총수 증인 자제’ 기류를 분명히 하면서 최종 채택 여부는 안갯속이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주 각 의원실로부터 증인·참고인 신청 명단을 제출받았다. 이날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장 고문을 증인 신청 명단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와 주민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장 고문을 증인 신청했다”고 말했다. 환노위는 이달 말 전체회의에서 증인 채택안을 공식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반복되는 환경법 위반…커지는 제련소 폐쇄 여론

영풍 석포제련소는 올해 상반기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58일간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공장 내부 오염토양 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7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석포제련소의 책임을 인정하고 환경부 장관에게 토양정밀조사 이행을 권고했다.

이후 낙동강 유역 주민 13명이 영풍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피해 주민 대책위는 지난달 장 고문을 형사고발했다. 카드뮴 유출, 불법 폐기물 매립, 대기 분진 확산, 정화명령 불이행, 오염물질 누출 미신고 등 중대한 혐의가 망라됐다.

지역사회 반발도 거세다. 안동시의회는 지난 20일 본회의에서 의원 전원 찬성으로 ‘석포제련소 폐쇄 촉구안’을 의결했다. 제련소가 지난 54년간 낙동강 상류와 안동댐 일대에 심각한 오염을 초래했고, 120차례 이상의 환경법 위반과 반복된 과징금·조업정지로 이미 사회적 신뢰를 상실했다는 점이 근거였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24일 국회 환노위 환경부 종합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장형진 영풍 고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24일 국회 환노위 환경부 종합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장형진 영풍 고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 장 고문, 다시 증인석 서나

이 같은 상황에서 장 고문의 국감 증인 재소환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지난해 환노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득구 의원이 “오너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오너가 아니다. 영풍 주식도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염 문제가 반복되면서 올해는 ‘책임 회피 논란’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환노위에서는 정혜경 의원실이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을 참고인으로 신청해 낙동강 수질오염 전반을 짚을 계획이다. 석포제련소 이전 문제까지 질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 고문 소환 논란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맞물려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북 지역 7대 광역공약 가운데 하나로 ‘낙동강 살리기’를 내걸었다. 단순 수질개선을 넘어 제련소 이전·부지 정화·주민 생계 지원을 포괄하는 종합대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 요구가 담긴 공약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국감을 공약 이행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낙동강 살리기는 대통령의 직접 공약이자 국가적 과제”라며 “특히 영풍이 경북 봉화군이 내린 오염토양 정화명령을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이 부분이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3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폐쇄·이전과 정의로운 전환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정용석 기자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3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폐쇄·이전과 정의로운 전환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정용석 기자

◇ 민주당·대통령실은 “총수 소환 자제”

문제는 정치권의 기류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총수 증인·참고인 채택을 최소화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야당 때처럼 총수를 마구잡이로 부르지 말고, 여당답게 국감을 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반기업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입장이다. 10월 말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국감 일정이 겹치면서, 정부는 기업 협력이 절실한 시기라고 보고 있다.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대미 관세·공급망 협상, 청년 채용 확대 등 굵직한 민관 과제가 산적해 있어 기업 총수 소환이 오히려 외교·경제 현안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재계 총수들을 만나 ‘원팀’ 정신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만약 장 고문이 증인으로 채택된다면, 쟁점은 제련소의 존속 여부와 ‘오너 책임’ 규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장 고문이 명단에서 빠진다면 “공약 이행을 외면했다”는 비판과 함께 “정치권이 기업인 봐주기에 나섰다”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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