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검, 병원 이사장 등 8명 기소···규모 50억 넘어
검찰, 유령법인 적발···병원도매 관리 강화 가능성
의료계·약가인하 여파 관심···입찰 시나리오 등장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제약업계가 유령법인 등 의약품 도매의 리베이트 적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수도권 중심으로 계열사를 갖춘 대형도매 회장이 기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의약품 도매업체 회장 A씨 외 대학병원 이사장 등 8명을 배임 수·증재, 의료법 위반과 약사법 위반, 입찰방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전날 기소했다. 구체적으로 A씨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종합병원 3곳에 의약품을 공급하면서 실체 없는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이사장 가족 등에게 배당금 명목으로 리베이트 34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이사장 가족을 유령법인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급여를 제공하고 법인카드 및 골프장 회원권을 사용하게 하는 등 16억원 리베이트 혐의도 받고 있다. 

전날 이같은 사건 내용이 알려지자 제약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건 내용을 수소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불경기 지속으로 상위권 업체들도 투자에 소극적 상황에서 업계 이슈가 적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도매업계도 유사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상대적으로 이슈가 많은 병원과 문전약국 납품에 있어 A씨는 지속적으로 거래처와 관계사를 늘렸던 인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의약품 도매 법인이나 종병이 기소되지 않고 모두 개인이 기소된 것이 특징으로 분석된다. 서부지검에 따르면 피고 8명은 도매 회장 외에 의료기관은 물론 현직 학교법인 이사장도 파악된다. 해당 회장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번호를 입수해 검색했지만 A씨의 성만 확인됐다. 안씨 성을 갖고 있는 피고가 전날(18일) 기소된 사건은 2건으로 파악됐다. 한 건은 약사법위반 등 혐의였다. 다른 한 건은 장모 피고인과 동일하게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관련 내용이다.

사건 핵심은 리베이트 최신 기법으로 소개된 유령법인이다. 서부지검은 실체 없는 유령법인을 설립, 그 이익을 배당금 명목으로 병원에 제공한 신종 리베이트를 최초 밝혀냈다고 강조했다. 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대학병원 이사장 일가가 정상적 거래를 가장, 리베이트를 받은 뒤 도매업체들과 입찰담합을 행해 거래의 공정을 해한 범행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이번 사건의 향후 여파는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 가능하다. 우선 유령법인이 드러난 상황에서 병원 납품도매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가능성이 예고된다. 검찰은 안 회장이 유령법인을 통해 제공한 리베이트를 50억원대로 추산했는데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상당수 병원 납품도매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의약품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 여파가 크면 결국 도매에 대한 여신관리 등이 강회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재로선 종병 3곳 중 2곳이 알려졌지만 해당 병원 규모가 커 사건 여파도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 적지 않다. 의료계에도 영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검찰이 판단하는 리베이트에는 50억여원 외에도 병원 이사장 등에 제공한 고문료 등이 포함된 상황이다. 이번 사건이 해당 대형도매 경영에 미치는 여파도 중요하다. 이미 안 회장은 로펌 3곳을 법률대리인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법원 재판부가 안 회장만을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할 경우 관계사까지 1조원대 매출규모를 보유한 해당 도매는 지속적 영업이 가능할 전망이다. 반면 단순 개인비리가 아닌 조직적 리베이트라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해당 업체에 직간접 영향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리베이트 사건이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에 빌미를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고 있다. 근본적으로 의약품 가격이 높기 때문에 마진을 취하는 도매업체가 병원에 리베이트를 줄 여유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국내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인하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한 바 있다. 

또 다른 핵심은 사립병원의 입찰 정책 변화 여부로 분석된다. 안 회장의 대형도매는 모 종병의 2025년 입찰에서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참여했다는 것이 검찰 혐의 내용이다. 이번에 이사장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진 해당 종병 입찰은 공고 시점부터 특정업체 내정과 자격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청한 의약품 도매업체 관계자는 “당장 기존 낙찰 결과를 뒤집고 재입찰하면 검찰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돼 병원측으로서도 난감할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모르겠지만 의약품 공급은 당분간 변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형 리베이트 사건은 결국 업체 내부나 외부 관계자 제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도매업체들 직원 관리가 타이트해지고 리베이트가 더욱 지능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의약품 도매업체 관계자는 “해당 도매 직원들이 유령법인 직원을 겸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부 사안을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병원 입찰에서 낙찰받지 못한 측이 제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은 대형도매의 리베이트 관련 제보를 확인한 후 2023년 12월 수사에 착수했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도매 리베이트 사건은 제약업계나 도매업계는 물론 의료계에도 전방위적 여파가 예상되는 사안으로 분석된다. 일부 사례지만 수의계약은 수의계약대로, 입찰은 입찰대로 리베이트가 제공되는 현실에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메스를 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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