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 ‘고객 요청’에 북미 재검토···분리막은 ‘관망’
IRA 규정 강화 따라 결국 북미 현지화 필수 과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생산한 동박. / 사진=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생산한 동박. / 사진=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변화 속에서 국내 이차전지 소재업체들이 각기 다른 셈법으로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원재료 특성, 고객사 구조, 수출 비중 등에 따라 미국 공장 투자 여부와 전략 전환의 속도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동박 업체들은 원재료인 구리에 대한 품목관세 리스크에 노출된 반면, 분리막 업계는 ‘비(非)중국산 선호 수요’에 대응하는 유연한 전략을 펴는 모양새다.

7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구리를 원재료로 쓰는 동박업계는 미국의 ‘구리 50% 관세’ 부과 결정 이후 직접적인 압박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북미 공장 설립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는 전날 컨퍼런스콜에서 “동박은 맞춤형 제품이라 직접 피해는 제한적이지만, 고객사의 수익성 저하로 인해 현지 생산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 말 중단했던 미국 투자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든 셈이다.

반면 SKC의 동박 자회사 SK넥실리스는 아직 북미 투자 계획을 공식화하진 않은 상태다. 다만 2분기 실적에서는 미국 수요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SK넥실리스는 2분기 매출 1273억원을 기록하며 7분기 만에 1000억원대를 회복했고, 북미 판매량은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북미 주요 고객사들의 배터리 공장 가동이 본격화된 덕분이다. 

분리막은 구리를 원재료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관세 외에는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 미국 정부의 감세법안(OBBBA)에 따라 새로 도입된 금지외국기관(PFE) 및 우려 국가 부품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 사진=SKIET
/ 사진=SKIET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측은 “IRA의 보조금 세부 지침이 완화되면서 당장 북미 진출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단기 진출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비(非)중국산 분리막에 대한 수요 증가에는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분리막 생산업체 WCP 역시 북미 진출에 대해선 미국 관세 영향 등 이유로 보수적인 투자 기조 하에 추가 검토 후 발표할 방침이다.

소재업계가 미국발 규제에 제각각 다른 스탠스를 취하는 데는 제품 구조와 고객사 전략 차이가 작용하고 있다. 분리막과 달리 동박은 국가별 관세 외에도 품목 관세(50%)가 적용돼 현지 생산에 대한 이점이 더 크다. 

그러나 분리막 업체들도 결국 북미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IRA에 따라 우려국가부품 허용 비율이 2026년 40%에서 2030년 15%까지 단계적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북미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적자에 묶인 투자···소재업계 ‘현금 딜레마’

소재업계 고민은 결국 ‘돈’이다. 업황 부진 속에서 벌어들이는 현금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선제적 투자를 추진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SKC,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등 동박 3사를 비롯해 분리막 업체 SKIET, WCP 모두 올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동박과 분리막 업체 모두 셀 생산업체에 비해 미국 현지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인 이유다.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이 부진한 데다, 북미 현지 공장 설립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가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도 보수적인 대응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반기 소재업계 전망은 더 암울하다. 오는 10월부터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마저 폐지되는 상황이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배터리 부진은 하반기에 심화될 전망”이라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경우 3분기 영업손실 355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적자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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