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중심 상승세, 서울 전역·수도권 확산
공급 절벽·유동성 기대·DSR 막차 심리 작용
정책 지연 속 2021년 과열장세 재현 경고음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불붙었다. 강남발(發) 상승세는 서울 전역과 수도권으로 번지고 신고가 거래도 속출하고 있다. 공급 부족과 유동성 기대, 대출 규제 전 막차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지역은 전고점을 넘기며 2021년 집값 급등기와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서울 전역 아파트값 상승 전환…외곽·수도권까지 확산
1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6월 9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26% 올랐다. 지난해 8월 넷째 주(0.26%)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큰 주간 상승폭이다. 당시 하락장이 잠시 멈추고 반등세로 전환되던 시기였고 지금은 여러 요인이 동시에 겹치면서 시장이 더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파(0.71%)·강남(0.51%)·강동(0.50%)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오름세는 성동(0.47%)과 서초(0.45%) 등으로 확산 중이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뿐 아니라 마포·양천·용산 등에서도 전고점을 넘어선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서울 전역으로 빠르게 번지는 모양새다. 올해 초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외곽 지역까지 일제히 반등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모두 아파트값이 상승 전환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한동안 조용했던 노원·도봉·성북 등에서도 거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수도권 주요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과천은 이미 전고점을 돌파했고 성남 분당(0.58%), 용인 수지(0.36%), 하남(0.25%) 등지에서도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경기 전체 아파트값도 이달 들어 처음으로 플러스로 돌아섰다. 업계에선 강남발 상승세가 경기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공급 한파’ 현실화…유동성 기대·대출 규제 앞두고 매수세 폭발
시장에선 이번 급등세가 일시적 반등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 감소, 유동성 기대, 대출 규제 전 막차 수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공동주택 공급은 약 4만6700가구로 집계됐다. 내년은 이보다 절반 수준인 2만4400가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 감소는 착공 지연에서 비롯됐다. 올해 1~4월 서울 아파트 착공 실적은 8357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1만606가구)보다 21.2% 줄었다. 인허가 지연, 자재비 상승, 분양 연기, 정비사업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유동성 확대 기대감도 매수 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이달 말 2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2분기 중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돈이 다시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유동성이 돌면 집값은 다시 뛴다”는 식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2021년 현금과 쉽게 인출할 수 있는 예금 등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을 뜻하는 M2(광의통화)가 크게 늘었고 이듬해 서울 아파트 실질가격은 14%나 상승했다.
다음 달 시행 예정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도 실수요자들의 ‘막차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이번 규제는 연소득 6000만원 이하 차주까지 DSR 전면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출 한도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실수요자들이 ‘6월 내 계약’을 서두르면서 매수세가 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선 거래량이 회복되고 신고가도 속출하고 있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는 최근 21억원에 실거래되며 직전 고점을 넘겼다.
◇ 정책 늦고 시장 먼저 반응…2021년 재현 우려
정부는 뒤늦게 부동산 시장 점검 TF를 꾸렸지만 실질적인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재지정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는 마포·성동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상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책이 늦어지는 사이 수요가 비규제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마포·성동이 규제 대상이 될 경우 인접한 광진·성북·서대문 등으로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며 “실제 일부 지역에선 거래 증가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과거에도 규제 회피성 수요가 확산되며 풍선효과를 만들었던 전례와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시장은 이미 정부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실제 서울 주요 단지에선 거래량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월에 1만건을 넘긴 뒤 4월 주춤했으나 5월 이후 다시 증가세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최근 압구정 72억원과 잠실 29억원 등 고가 단지에서 실거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확산되며 실수요자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또 집 사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매수세를 자극하는 분위기다.
정책 대응이 계속 뒤처지고 시장이 선행하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다시 한번 급등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책 신호는 늦고 시장은 먼저 움직이는 비대칭 상황”이라며 “정부가 방향성과 실행계획을 조속히 제시하지 않으면 2021년과 같은 과열 장세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