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속 유동성 방어 나선 SK지오센트릭
1분기 1100억대 적자에도 현금 1.3조 확보
프랑스 자회사 차입약정 면제도
‘적자 늪’ SK온 살리기···SK이노 전 계열사 총력 긴축

SK지오센트릭 울산 공장 전경. / 사진=SK
SK지오센트릭 울산 공장 전경. / 사진=SK이노베이션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SK온의 장기 적자가 SK이노베이션 계열사들의 경영 기조를 바꾸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올해 1분기 1000억원 넘는 적자를 냈지만, 오히려 차입을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현금 방어’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 자회사에서는 채권단의 약정 위반 면제(웨이버)를 받아내며 외형상 재무 안정성을 유지한 사례도 나왔다. SK온 지원을 위한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압박이 ‘계열사 긴축 도미노’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적자에도 줄인 차입, 늘어난 현금

4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은 올해 1분기 석유화학 부문에서 114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전년 동기 485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실적이다. 같은 기간 매출은 3조4815억원에서 3조1581억원으로 9.5% 감소했다.

하지만 재무 구조는 오히려 건강해졌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해 1분기 1조2827억원을 기록, 30% 가까이 증가했다. 순차입금은 같은 기간 1조9930억원에서 1조8843억원으로 감소했다. 투자 대신 유동성 확보에 방점을 둔 전략이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1분기 125.5%에서 올해 1분기 142.1%로 16.6%P 상승했다. 자산 총계가 줄고 자본 총계가 감소한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35.0%에서 38.0%로 소폭 상승했다. 빠듯한 자금 여건 속에서도 현금을 우선 챙기고 차입은 줄이려는 방어 기조가 뚜렷했다. “흑자가 아니라도 유동성만은 지키자”는 SK식 리밸런싱 기조가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사례다.

SK지오센트릭은 실적 부진 속에서도 현금 유출을 억제하며 방어적 재무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는 최소화하고, 기존 투자자산을 정리하며 현금 확보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앞서 SK지오센트릭은 신성장 사업으로 추진하던 울산ARC(폐플라스틱 재활용 단지) 투자를 보류했다. 투자비만 1조8000억원에 달하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지난해 10월 미국 퓨어사이클과의 합작법인 추진도 지분 전량 매각으로 정리했다. 매각가는 약 1400억원으로 알려졌다. “돈 안 되는 신사업은 뒤로, 당장 현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SK그룹의 리밸런싱 전략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SK지오센트릭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처리 공장이 지어질 울산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 / 사진=SK이노베이션
SK지오센트릭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처리 공장이 지어질 울산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 / 사진=SK이노베이션

◇ 프랑스 자회사 SKFP, 웨이버로 위기 넘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의 프랑스 자회사 SK Functional Polymer(SKFP)는 올해 1분기 재무약정 위반 사유가 발생했다. 순차입금 대비 EBITDA 비율이 차입조건 기준을 밑돈 것이다. 외화 장기차입금 1억6100만 유로(약 2512억원) 가운데 해당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전액이 유동부채로 전환됐다.

다만 SKFP는 최근 대주단으로부터 웨이버(일시적 적용 유예)를 확보했다. 업황 부진으로 당장의 수익 창출력은 제한적이지만 주력 제품군의 마진 회복 가능성과 현금성 자산 확보 등 재무 안정성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SK그룹이 글로벌 자회사 단위까지 시장과의 신뢰 유지를 위해 “재무 위험은 통제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웨이버는 근본적 면제가 아닌 한시적 유예에 불과한 만큼, 대주단이 향후 조건 조정을 요구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SK지오센트릭의 현금성 자산 및 단기유동성 등 자금여력이 충분한만큼 만기 시 상환 또는 차환 등 다양한 옵션으로 대응할 예정”이라며 “추가 차입도 가능한 안정적 재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PX 등 아로마틱 시황이 미중 관세유예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수익성이 개선되면 재무약정 미준수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사진=SK이노베이션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사진=SK이노베이션

◇ 전 계열사로 번지는 긴축 압박

긴축 기조는 SK지오센트릭만의 얘기가 아니다. SK이노베이션 산하 SK E&S는 서울 대치동 소재 5만㎡ 규모 부지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 중이다. 해당 부지는 과거 개발 기대감이 높았던 ‘세텍 복합개발지구’ 후보지였지만, 이해관계 충돌로 개발이 무산되며 보유만 이어져 왔다. SK이노베이션 분리막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도 리밸런싱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선 이러한 SK이노베이션의 행보를 SK온의 실적 부진으로 인한 그룹 전체 현금 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매년 조 단위 적자를 내는 SK온은 기업공개(IPO) 물론 사모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이 무디스 기준 ‘투자부적격’인 Ba1까지 하락하면서 자금조달 비용도 상승한 상태다.

재무개선 압박은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SK이노베이션은 정기인사 시즌도 아닌 시점에 실적 부진 계열사 3곳의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했다. 당시 SK지오센트릭의 나경수 사장도 자리를 내놓았다. 올해는 총괄사장이자 대표이사였던 박상규 사장도 교체됐다. 

SK이노베이션의 새 수장이 된 장용호 총괄사장은 지난 2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가 가진 사업은 수익성과 재무안정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리밸런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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