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 式 분쟁 투자, 수익률만 보면 ‘성공적’
한진칼 투자 수익률 2배···LS 주가도 '껑충'
"주주 간 분쟁, 결국 산업계 전체 손실" 주장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호반건설 사옥. / 사진=호반그룹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호반건설 사옥. / 사진=호반그룹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호반그룹이 또 한 번 재계에 묵직한 돌을 던졌다. 한진칼에 이어 이번엔 LS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3% 이상 확보하면서 또 하나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재계는 호반의 연쇄적 지분 투자를 일종의 ‘분쟁형 투자전략’으로 보고 있다. 이기면 계열사 편입, 지면 차익 실현. ‘지더라도 남는 장사'가 가능한 구조다.

◇ 한진칼에 8662억 베팅…벌써 수익률 2배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처음 인수한 건 2022년 3월이다. 호반그룹은 행동주의펀드 KCGI로부터 1106만주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장외 매수 등을 통해 총 8662억원을 투입했고, 현재 지분율은 18.46%까지 올랐다. 조원태 회장 측 지분과 단 1.67%P 차이다.

호반이 한진칼의 지배권을 쥐기엔 아직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우선 산업은행(10.58%), 델타항공(14.9%) 등 우호 지분을 합친 조 회장 측 지분은 46%가량이다. 단순 계산으로 조 회장 측 지분을 뛰어넘으려면 2조6000억원가량을 지분 매입에 써야 한다. 호반 측도 “단순 투자 목적”이라며 경영권 분쟁 가능성엔 선을 긋고 있다.

◇ ‘패배해도 괜찮은 게임’…분쟁은 오히려 주가 모멘텀

하지만 투자금 회수 측면에서는 이미 성공한 게임이다. 분쟁 가능성이 부각되며 주가가 급등했고, 지분 매각만으로도 조 단위 차익실현이 가능한 구간에 진입했다. 이날 기준 호반그룹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1조8400억원에 이른다. 투자 수익률은 이미 200%를 넘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 입장에서는 경영권 확보가 아니어도 지분만으로도 상당한 레버리지를 확보한 셈”이라면서도 “다만 이것이 애초의 목적이라기보다는,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협상 카드에 가깝다”고 했다.

16일 한진칼이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키로 결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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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전선-LS전선 갈등 속, LS 3% 지분 확보

호반은 최근 LS 지주사 지분도 3% 이상으로 늘렸다. 상법상 3% 이상 주주는 회계장부 열람, 주총 소집 청구, 이사 해임 요구권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배경에는 대한전선과 LS전선 간의 갈등이 놓여 있다. 대한전선은 호반그룹의 자회사다. 양사는 특허 소송전과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 등으로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LS 측이 한진그룹과 자사주 거래로 ‘조원태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날 보고서를 내고 “호반의 지분 매입은 자회사 대한전선과 LS전선 간 소송전에서 협상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단순한 재무 투자 이상의 전략적 의미”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호반이 단기적으로 주주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소송이 본격화하는 시점부터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봤다.

지난 3월 13일 호반 측이 LS 지분 매입에 나섰다는 소식에 LS의 주가는 18.9% 급등한 12만1000원을 기록했다. 당시 호반 측은 LS 지분을 3% 미만 수준으로 매수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호반 측이 LS 지분을 3% 이상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LS 주가는 또 뛰었다. 이날 기준 LS 주가는 16만1200원으로 3월 중순과 비교해 58% 넘게 올랐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과거 금호그룹 인수전, 대한전선 인수전 등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했다. 결과와 무관하게 전략적으로 이득을 취한 사례였다. 실패할 경우에도 투자 차익을 남겼고, 성공할 경우에는 그룹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산업 전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LS 지분 확대 사례는 지배권 장악보다 견제 또는 레버리지 목적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과거 금호산업 등과의 사례에서도 지분 매입 이후 직접적인 경영 참여보다는 엑시트를 택했다.

LS전선 해저케이블이 선적되는 모습. / 사진=LS
LS전선 해저케이블이 선적되는 모습. / 사진=LS

◇ 분쟁으로 흔들린 산업…글로벌 경쟁력 손상 우려도

시장 관계자들은 이러한 투자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유효할 수 있지만, 산업계 전체로는 장기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 속에서 제조 기반 대기업들이 주주총회 대응과 경영권 방어에 신경 쓰게 되면 산업 전략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국이 국내 제조업을 위협하는 상황서 주주 간 분쟁에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역행하는 구조”라며 “호반이 건설업 기반이긴 하지만 투자 재원 대부분은 고객 보증금이나 임대수익처럼 본업 외 유동자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자금을 활용해 경영권을 흔드는 것은 산업 생태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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