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허 수·산업화 속도 모두 우위···한국, 품질로 ‘방어’
CATL, 정부 지원에 R&D 3조···K배터리, 유증·차입 의존
수익성·세제혜택도 격차···“한국판 IRA 시급”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출처=연합뉴스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출처=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배터리 기술 경쟁이 특허 전쟁으로 번지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은 기술력으로 맞서고 있지만,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워 주도권을 넓히고 있다. 이에 배터리 업계는 “이젠 민간 차원 투자 만으론 부족하다”며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7일 국제학술지 에너지와 환경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에 게재된 ‘미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지정학적 경쟁’ 논문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와 나트륨 이온(SIB)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6개 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전체 특허의 59%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나트륨 이온 배터리와 같은 저가형 기술 분야에선 특허의 90% 이상이 중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표준 선점 노린 中, 특허부터 생산까지 ‘속도전’

논문은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특허 출원이 전 영역에서 폭증했다고 분석했다. 삼원계 배터리를 집중적으로 개발한 한국과 달리 고가형과 저가형 기술을 동시에 키우는 ‘이중 전략’을 택한 결과다. 

중국은 나트륨 이온 배터리 전용 공장만 2025년까지 30곳 이상 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CATL은 지난달 2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낙스트라’와 5분 충전으로 520km 주행이 가능한 리튬 배터리 ‘션싱’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논문은 중국이 단순히 특허를 많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상업화해 글로벌 표준화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허품질지표(PQI) 분석에서도 중국은 특허의 국제화 지수, 출원 건수, 기술 영향력 등 주요 항목에서 ‘물량 공세’를 통해 특허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나트륨 이온 배터리 분야에서는 특허 수는 물론 품질 지수까지 평균 이상으로 나타났다. 단기 상용화와 장기 표준 선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모형. / 사진=정용석 기자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모형. / 사진=정용석 기자

◇ 韓, 고성능 배터리 특허 품질 상위권···확장력은 제한적

반면 한국은 고성능 기술 중심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고체 분야에 특허 품질은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고성능 배터리 관련 특허 수 자체는 중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화 단계로 확장되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리다고 분석됐다. 논문은 한국의 전략을 ‘품질 중심의 방어형 포지션’으로 규정했다.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연계 수단 역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양국의 격차가 정부 지원의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점유율 1위 중국 업체인 CATL은 지난해 중국 정부로부터 1조1300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받았고, 3년 연속 연간 3조원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상무부 조사 결과 배터리 음극재 소재 중 하나인 흑연 가격을 조사한 결과 중국 후저우 카이진은 무려 721%의 보조금을 받았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인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은 유상증자나 차입에 의존해 R&D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3사의 올해 1분기 기준 총 차입금은 50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42조5000억원) 대비 7조원 넘게 증가한 것이다.

수익성에서도 중국이 우위에 있다. 최근 LS증권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CATL은 지난해 영업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ROE), 총자산이익률(ROA) 등 6개 수익성 지표 가운데 5개에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반면 K배터리 3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8%로, CATL·BYD·CALB 등 중국 배터리 3사(10.5%)와 큰 격차를 보였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재무 구조와 수익성 모두에서 한국이 밀리는 상황에서 추가 유상증자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K-배터리 퀀텀 점프를 위한 이차전지 배터리 직접환급제 도입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정용석 기자
지난 2월 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K-배터리 퀀텀 점프를 위한 이차전지 배터리 직접환급제 도입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정용석 기자

◇ “기술력만으론 부족”···업계, 정책 전환 목소리 높여

세제 지원 면에서도 중국과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법인세 감면 방식의 세액공제에 그쳐 적자 기업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투자세액공제를 현금으로 환급하거나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판 IRA’ 수준의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국회 논의는 답보 상태다.

업계는 정부의 전략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품질로 버텼지만, 이젠 속도와 스케일의 싸움”이라며 “특허 수에서 밀리고 상용화까지 뒤처지면 품질 좋은 특허도 시장에선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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