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일부 기본화···G80·독일차에 밀려 애매한 포지셔닝 탓에 판매 부진 지속
기아 “가격 대비 가치에 주목”···후속 모델 출시는 미지수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부사장님 차’로 알려진 기아 초대형 세단 K9이 판매 부진 속 단종설을 뚫고 연식변경모델로 새롭게 출시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 2일 ‘2025 K9’ 일부 등급모델(트림)의 사양 구성을 소폭 재편하고 가격을 인상했다.
기아는 같은 날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니로 연식변경모델의 출시 사실을 보도자료에 담아 알린 반면, 2025 K9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소개했다. 2025 K9의 상품성 변동폭이 비교적 작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2025 K9의 트림별 가격(개별소비세 5.0% 기준)은 3.8 가솔린 플래티넘 5962만원, 베스트 셀렉션Ⅰ 6789만원, 마스터즈 7529만원, 베스트 셀렉션Ⅱ 8239만원으로 책정됐다. 이전 모델 대비 최소 24만원(베스트 셀렉션Ⅰ)에서 최고 134만원(마스터즈)까지 인상됐다.
엔진별 모델 기본 트림인 플래티넘의 사양 구성은 이전 모델과 대부분 동일하고, 기존 모델에 없던 사양 ‘뒷좌석 시트벨트 버클 조명’이 기본 장착됐다. 가격이 가장 많이 인상된 인기 트림 마스터즈는 앞좌석 전동식 헤드레스트, 동승석 에르고 모션 시트, 동승석 에어셀 타입 허리지지대, 동승석 시트백 볼스터 전동조절장치 등 기존 모델 선택사양 패키지에 담겼던 사양 일부를 기본화했다.
◇ G80에 밀리고, 수출은 사실상 중단
기아는 최근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K9의 3세대 완전변경모델 출시나 단종이 언급된 상황에서 연식변경모델 출시를 결정했다. 소비자들은 지난 2021년 기아가 K9의 2세대 부분변경모델을 출시한데 이어 올해 3세대 모델을 출시하거나 반대로 단종시킬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기아가 내년 이후 K9을 계속 판매할진 미지수다. 최근 수요가 동급 모델 대비 부진하고 수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내수용 모델이기 때문이다. K9의 지난 1분기 국내 판매대수는 전년동기(506대) 대비 7대(1.4%) 증가한 513대에 불과했고, 12대 수출되는데 그쳤다.
K9은 크기와 배기량 등 측면에서 현대차·기아 세단 라인업 중 최상위 모델이고 제네시스 G80, G90 사이에 포지셔닝 하고 있다. K9은 전장 5140㎜, 전폭 1915㎜, 전고 1490㎜, 축거(휠베이스) 3105㎜에 달하고 3.3 가솔린 터보, 3.8 가솔린 등 2가지 엔진 선택지로 제공된다. G80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가 전장이 5000㎜를 소폭 상회하고 3.3ℓ 이하 배기량의 엔진을 사용하는 점과 비교된다.
K9은 해당 모델과 차급으로 구분되지만 브랜드 감성 측면에서 밀렸단 평가다. 기아는 지난 2012년 브랜드 최상위 세단 ‘오피러스’ 후속 모델인 K9을 출시했다. 2009년 K7을 시작으로 재정비돼온 기아 세단 라인업 ‘K 시리즈’의 하나로 편입됐다.
K9은 2015년 제네시스 출범 전후 고급 세단으로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각광받았다. 2018년 디자인과 상품성을 전면 개선한 2세대 완전변경모델이 출시된 후 1만1677대 판매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제네시스가 출시한 신차가 인기를 모으는 동안 K9의 입지는 위축됐다. 제네시스가 지난 2020년 출시한 G80 3세대 완전변경모델로 5만3000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시작가 6000만원 후반대인 E-클래스, 5시리즈도 수입차 업체, 딜러사의 수천만원대 할인 공세에 힘입어 K9과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됐다. 그동안 K9 판매량은 수천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브랜드 위상을 중시하는 한국 소비자들이 K9보다 G80, 유럽 브랜드 차량을 선호한단 관측이 제기된다. 대중 브랜드 기아의 세단 중 하나인 K9이 ‘사장님 차’ 아닌 ‘부사장님의 차’, ‘전무님의 차’로 저평가되는 이유다.
누리꾼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K9 완전변경모델 가상도에 대해 “차라리 기아 마크 떼고 제네시스 라인업으로 편입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K9 수출 실적도 미미하다. 기아는 작년 K9을 79대만 선적했다. K9은 출시 직후 미국, 중동, 러시아 등지에 수출됐지만 세단 강자인 유럽 브랜드와 벌인 경쟁에서 뒤처진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대세가 이어짐에 따라 수요가 더욱 줄었단 분석이다.
기아는 현재로선 연식변경모델로 출시한 K9을 고객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로 제안한단 전략이다.
기아는 공식 SNS를 통해 “K9은 국내 E-세그먼트 수입 세단보다 크고 고배기량 엔진을 장착했으며 다양한 편의사양을 기본 탑재했다”면서 “럭셔리 세단의 핵심 가치를 가격 대비 높은 수준으로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치중한 소비 대신 프리미엄과 실리를 함께 추구하는 고객에게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