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한계 뚫고 ‘속응성 전원’으로 부상
국내외 수요 폭증···두산, ‘전력망 키플레이어’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가스터빈이 최근 재생변동성 시대에 계통 안정성을 높일 핵심 전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빠른 가동과 출력 조정이 가능해 급격한 신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에도 전력망을 즉각 안정시킬 수 있어서다.
국내 유일의 대형 가스터빈 제조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초속응성 전원으로서 가스터빈의 역할에 주목하며 생태계 복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5기를 수주한 데 이어 올해는 4기 추가 공급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실적을 바탕으로 미국 수출과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
이달 들어 가스터빈의 입지는 더 주목받고 있다. 2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남부지방 일대에 갑작스럽게 구름이 끼면서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하면서 전력 수요가 1시간 만에 4GW 이상 치솟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율촌, 대산, 인천 지역에서 가스터빈 6기가 긴급 단독 기동됐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긴급 투입이다.
전력망의 초속응성 대응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국내 전력망은 태양광 설비 급증으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누적 설치용량 30GW를 넘긴 태양광은 맑은 날 출력이 급증하고, 구름이 끼면 발전량이 급감한다. 이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정이 반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기온 변화만 고려하면 됐지만 지금은 구름 한 점에도 전력망이 출렁이는 상황”이라며 “에너지저장장치(ESS)만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초속응성 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가스터빈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연소해 발생한 고온·고압 가스를 이용해 터빈을 회전시키고, 이 회전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수 분 이내에 출력을 조정할 수 있어 급격한 수요 변화나 재생에너지 출력 급감 상황에서도 즉각 대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스터빈은 ‘속응성 전원’으로서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기술 장벽도 높다. 대형 가스터빈은 GE, 지멘스 에너지, 미쓰비시 파워 등 소수 기업만 제작하고 있다. 국내서 제작할 수 있는 업체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유일하다. 회사는 지난 2019년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독자 개발해 전 세계 다섯 번째로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 국내 실적 쌓고 글로벌 진출 모색
지난해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가스터빈 사업은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스터빈 총 5기를 국내 발전공기업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도 4기 이상을 추가 공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사 측은 오는 2029년까지 가스발전으로만 매출 1조8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주는 2027년부터 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최적화된 제품 경쟁력으로 시장을 수성할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사업 인프라를 활용해 경제적인 발전소 운영을 지원하고, 경쟁사 대비 신속대응체계 구축 및 대형 수소 터빈 조기 확보로 무탄소 솔루션도 제공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HD현대마린엔진과 가스터빈용 정밀주조 블레이드 공동개발에 나서며 소재·부품 분야까지 국산화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내 실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 전 세계적으로 무탄소 발전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미국 내 가스발전 설치량은 2030년까지 연평균 12~13GW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설치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로, 가스터빈 시장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장 규모도 지난해 187억달러(약 26조원) 수준에서 오는 2031년 227억달러(약 32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재 미국 내 다수의 데이터센터와 가스터빈 공급 논의를 진행 중이며 국내 생태계와 함께 ‘팀코리아’를 구성해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자회사 DTS를 통한 유지·보수(MRO) 방식 진출이나, 직접 수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탄소중립 전환 속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가스터빈은 빠른 출력 조정과 안정적 운영이 가능해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