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없는’ 제3자배정…유증 구조 전면 손질
“유상증자와 한화오션 지분 인수는 서로 전혀 다른 판단“
올해 매출 30조→2035년 70조 목표 제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구조를 손질하고 사상 처음으로 실적 가이던스를 공개했다. ‘승계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동시에 외형 확대에 걸맞은 실적 자신감을 시장에 내비친 셈이다.
8일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열린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은 “경영적으로 옳다고 판단했어도 주주와 정치권, 금융당국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밀어붙이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유상증자 논란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한화는 이날 오전 7시 이사회를 열고 기존 ‘전액 주주배정’ 구조를 변경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곧바로 8시 정정 공시를 냈고, 10시30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 “자금 순환·승계와 무관···오해 차단하려 구조 바꿨다”
수정된 구조는 총 3조6000억원 중 2조3000억원은 기존 주주 대상, 1조3000억원은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파트너스·한화에너지싱가폴 등 3개사가 참여하는 제3자배정이다. 할인율은 0%, 의무보유는 1년이다. 이사회 의결은 20~21일께로 예정됐다.
이번 구조 변경으로 소액주주 청약 물량은 줄었지만 15% 할인 조건은 유지된다. 한화 측 지분율은 2~3%P가량 올라 36% 안팎으로 재조정될 전망이다. 안 사장은 “한화오션 지분을 한화에너지가 1조3000억원에 매각한 자금이 다시 유상증자 형태로 되돌아오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앞서 2월 단행된 한화오션 지분 거래와 이번 유상증자가 비슷한 시점에 겹치며 시장에선 ‘자금 순환‘ 의혹이 불거졌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총수 일가가 유증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비판했고, 금융당국은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대해 안 사장은 “오해는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이번 유상증자와 한화오션 지분 인수는 서로 전혀 다른 판단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한화오션 인수는 사업 목적이었다”면서 “한화에너지는 지분을 투자 개념으로 일시 보유했을 뿐 직접 자금을 쓰지 않고 외부 차입으로 유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처음 내놓은 실적 가이던스
이날 설명회에서 가장 이례적이었던 건 실적 가이던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방산기업 특성상 수주 계약이나 매출 규모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주요 고객과의 보안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실적 추정이 어려운 구조라 증권사들은 예측치를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실적 서프라이즈가 반복되곤 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예상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3조원을 시작으로 2035년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번 가이던스 공개는 유상증자 당위성을 설득하려는 신호로도 읽힌다. 외형은 계속 커졌지만 실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그간의 평가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증 자금을 포함해 2028년까지 4년간 11조원 이상을 방산·조선·에너지·우주 분야에 투입한다. 해외 공장과 기술력 확보에 집중 투자한다.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를 반영해 현지화 전략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부문별 투자 계획은 △해외 매출 확대 6조2700억원 △R&D 1조5600억원 △지상 방산 인프라 2조2900억원 △항공우주 인프라 9500억원 등이다. 재원은 유상증자 외에 회사채, 영업현금흐름, 금융권 차입으로 조달한다.
안 사장은 “한화에어로는 국가대표 방산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유상증자 논란을 통해 주주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앞으로는 어떤 의사결정이든 시장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반영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