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희 부회장에 대한 조직 신뢰 컸지만···
내부 적임자 보이지 않아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가 DX(디바이스경험)사업부문을 총괄하던 한종희 부회장의 별세로 당분간 경영공백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DX부문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DS부문)을 제외한 스마트폰, 가전, TV 등 세트 사업 전반을 담당하는 곳이다. 삼성전자는 사업의 큰 줄기를 DX부문과 DS부문으로 나눠 대표이사 임원을 각 부문장으로 선임해 경영을 이어왔다.
한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전자는 큰 줄기 하나를 지탱하는 기둥을 잃은 셈이다. 한 부회장은 DX부문장을 비롯해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산하 조직인 DA사업부장도 맡고 있었으며, 지난해 세트부문 품질 강화에 집중하겠다며 야심 차게 신설한 품질혁신위원회의 수장까지 겸직 중이었다.
한 부회장의 역할과 그에 대한 조직의 신뢰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그에게 이 모든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부에 적임자가 없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가전사업은 현재 중국 가전의 추격, 인공지능(AI) 초격차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트럼프 관세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심화하는 정세 속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신속한 전략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환경에 놓여 있다.
특히, DX사업부문 경영공백은 사실상 회사의 AI 사업전략 방향을 설정할 조타수를 잃은 것과 다름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업계에서 최초로 스마트폰과 가전에 생성형 AI 기능을 선제 탑재하며 AI 디바이스 시장의 포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주요 기술개발 조직의 피땀 흘린 노력이 가져다준 성과이지만, 이를 통해 시장을 열 수 있는지 상용화의 타이밍을 정하는 것은 결국 최고 경영진의 몫이었다.
삼성전자 안팎에선 회사 내부에서 적임자를 찾아 하루빨리 경영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선 “테크 업계에 AI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 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스마트폰과 소비자 가전 부문을 이끌어온 한 부회장의 별세로 삼성전자의 위기 상황이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노태문 MX사업부장, 최원준 MX개발실장, 용석우 VD사업부장 등 임원들이 차기 DX부문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DA사업부문장을 포함해 디바이스 부문 전체를 총괄해온 한 부회장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내이사로 들어오면서 이 자리를 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아직 부당 합병 회계 부정 혐의 관련 대법원 선고가 남아 있어 가능성은 낮다.
삼성전자는 당분간 전영현 DS부문장의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반도체 사업 수장을 교체하면서 10개월간 한 부회장의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한 바 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전영현 DS부문장을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하면서 2인체제로 복원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1인 체제가 된 것이다.
회사는 경영공백이 해결될 때까지 기존에 추진해오던 포트폴리오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기술개발에 매진해 미래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종승 삼성전자 DA사업부 개발팀장(부사장)은 최근 미디어 행사에서 “이전부터 구체적으로 추진 방향과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고 있어서,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가전사업부 임직원들이 혁신에 매진 중이며, 이런 결과들이 사업 성과로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아무리 훌륭한 선원들이 있어도, 제대로 된 선장이 없다면 배는 목적지를 잃는다. 조그만 바람과 파도에도 휘청이게 된다. 한 부회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좋은 적임자가 하루빨리 나타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