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中 해운 압박' 현실화···글로벌 물류시장 '대혼란'
中 선박에 최대 51억 수수료 부과 추진
국내 해운업계 반사이익 속 장기 불확실성 '고심'

미국 LA 롱비치항에 정박 중인 HMM 컨테이너선. /사진=HMM
미국 LA 롱비치항에 정박 중인 HMM 컨테이너선. /사진=HMM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 해운사와 중국산 선박에 고율의 입항 수수료 부과를 추진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자국 조선 산업을 부활시키고 중국의 해상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미국 내 반발도 커지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는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지만 글로벌 교역 위축과 물류 혼란 등 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사업 다각화와 체질 개선 등을 통해 변화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전 세계 선박 98% 수수료 부과 대상

25일 업계에 따르면 USTR은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 영향력 약화를 위해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놓고 이날에 이어 26일 청문회를 개최한다. 이번 청문회는 USTR이 지난달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 입항 수수료를 물릴 것을 제안한 데 대한 화주, 조선업계 등 각계 대표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열렸다. 

해당 조치는 중국의 해운 및 조선 산업 지배력이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무역법 301조 조사에 따른 후속 조치로, 중국산 선박에 대해선 최대 350만 달러(약 51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수료가 부과될 전망이다. USTR은 중국 해운사의 경우 최대 100만 달러, 중국산 선박을 보유한 외국 선사에는 최대 150만 달러의 수수료를 항구당 부과할 계획이다.

USTR 방침에 따르면 중국 외 국가 기반 선사라도 중국산 선박 비중이 25% 미만이고 향후 2년간 중국에서 선박 주문이나 인도가 없어야 한다. 세계해운협회(WSC)는 전 세계 선박 약 98%가 미국 항구 입항 시 수수료 부과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컨테이너선만 따지더라도 90% 이상이 중국에서 건조돼 대부분의 선사가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될 전망이다.

◇ “이러다 다 죽는다“···美 내부서도 반발

해당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조선 산업을 부활시키고 중국의 해상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업계는 미국 내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청문회에선 미국 농업 수출업자와 해운사, 심지어 항만 노동자들까지 수수료 부과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컨테이너 상품 수출업체를 대표하는 농업운송연합(AgTC)의 피터 프리드만 대표는 “미국 농업 수출 경쟁력이 심각히 손상될 것”이라며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신발·의류협회도 수수료 부과로 인한 수출과 GDP 감소를 우려했다.

글로벌 해운업계 운항 방식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선사들이 미국 입항 횟수를 줄이고 캐나다나 멕시코 항만을 이용해 물류를 우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소규모 미국 항만들은 운항이 중단될 위험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앨런 머피 시인텔리전스 최고경영자(CEO)는 “운송 업체가 캐나다 항구를 통해 우회 물류를 진행하게 되면 미국 항만의 물류 허브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2일 오후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 감만·신감만 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 감만·신감만 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中 선박 비중 적은 韓 해운업계는 반사이익“

반면 국내 해운·조선사들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운협회는 국내 대표 선사인 HMM의 중국산 선박 비율이 매우 낮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HMM은 글로벌 해운사 중 중국산 선박을 가장 적은 비율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MM이 운영 중인 중국산 선박은 단 4척에 불과한 데다 이 중 2척은 계약기간이 1년이 채 남지 않은 용선인 것으로 파악됐다. SM상선의 경우 용선 2척 정도만 중국산이다. 

HMM 관계자는 “보유 중인 2척의 중국산 선박도 1000TEU급 소형 선박”이라며 “미국 항만에 입항하지 않는 선박이라 미국의 수수료 부과 조치에 따른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화그룹도 USTR의 고율 입항료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화해운은 지난 10일 USTR에 사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비전과 선견지명에 박수를 친다”며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표명했다. 이어 한화해운은 “미국이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 운반선 등 상업용 선단을 건조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USTR이 제안한 정책이 없으면 선박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데 필요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라이언 린치 한화해운 부사장은 오는 26일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한다. 한화해운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 정책 시행 시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 물동량 감소→운임료 하락 리스크도

다만 국내 해운업계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만 받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글로벌 물류 혼란과 비용 증가가 이어지면 전체 해상 물동량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물동량이 줄어들면 해상운임도 하락하게 된다.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최근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1292.75로 2023년 12월 이후 15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 물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높아진 탓도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세 분쟁 심화로 글로벌 교역량이 위축된 탓이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해운업계는 미국 정부의 공청회 결과를 주목하며 신중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단기적 반사이익을 넘어 장기적인 시장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다만 중국산 선박을 용선해 운용하는 중소형 화주들은 미국의 최종 조치가 나오기 전까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선박을 장기 임대하는 중소업체들은 고율 수수료 부과 시 운항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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