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대표, 임종훈→송영숙 전환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 불참하는 독일 ‘머크’ 방식 검토
업계 “사이언스 대표도 전문경영인 선임 서둘러야” 지적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지난해 1월부터 진행됐던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이 종식된 상황에서 향후 한미그룹 경영 구상 내용이 주목된다. 일단 ‘전문경영인’ 선임과 조직 정비에 주력할 전망이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는 임종훈 대표 체제에서 송영숙 대표 체제로 전환한다고 전날 공시했다. 이로써 최근 1년간 진행됐던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종식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초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OCI그룹과 통합을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발, 같은 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였고 형제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우군으로 확보하면서 이사회 과반을 장악했다. OCI그룹과 통합도 무산됐다.
이어 4월 송영숙·임종훈 모자가 공동대표에 오르며 오너일가 화합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임종훈 대표가 송 회장을 해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신동국 회장이 다시 모녀와 손을 잡으면서 두 번째 갈등이 진행됐다. 신 회장과 모녀는 3자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임종윤 사장은 본인을 한미약품 대표로 선임하고 최측근을 북경한미약품 대표로 선임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했다.
9월 초순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두 안건은 부결됐다. 이에 반발한 형제가 경영진 재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11월 개최한 한미사이언스 주총은 무승부로 귀결됐다. 3자연합은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회 정원을 11인으로 늘리고 신동국·임주현 이사를 진입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결국 정관 변경은 부결됐고 이사 선임 건이 통과되면서 사이언스 이사회 구도가 동수로 재편됐다.
12월 한미약품 주총에서는 임종훈 대표의 주주제안으로 신동국·박재현 해임안이 상정됐다. 모녀는 킬링턴을 백기사로 맞았고 세 번째 표 대결은 신동국·송영숙·임주현·킬링턴 4자연합 승리로 끝났다. 이후 지난해 말 임종윤 사장이 4자연합에 주식을 넘기면서 경영권 분쟁 종식이 예상됐다. 이달 3일 주식거래 완료 후 4자연합 우호 지분율은 54.41%, 형제 우호 지분율은 21.87%가 됐다.
이처럼 분쟁이 종식됨에 따라 한미약품그룹은 향후 ‘한국형 선진경영 체제’를 도입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선진경영 체제 핵심은 ‘전문경영인’ 선임이다. 4자연합이 추구하는 체제는 ‘주주가 지분만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풀이된다. 대주주는 이사회에서 한미약품을 지원하고 전문경영인이 선두에서 한미를 이끌어 나가는 구조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한미약품은 2023년 3월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이사를 선임, 지주사로부터 독자경영을 추진해 왔다.
현재 4자연합이 검토하는 기업은 353년 역사의 ‘머크’다. 머크는 독일 약방에서 시작, 세계 5위권으로 성장한 글로벌 제약사다. 기본적으로 머크는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등 두 개 위원회를 운영한다. 가족위원회는 머크 가문 일원과 머크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로 파트너위원회 구성원을 선출한다. 파트너위원회는 머크 최고 경영진을 선임한다. 전문경영인은 독자경영할 수 있고 대주주들은 감독 기능을 한다. 1920년대부터 머크 가문 일원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를 통해 회사 철학과 비전을 실현해왔다.
이에 일단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대표부터 신속하게 선임해야 한다는 업계 지적이다. 임종훈 대표가 13일 사임, 송 회장이 사이언스 대표를 맡았지만 이같은 체제는 과도기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미 송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위한 지원에 노력하겠다고 지난해 7월 밝힌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사실상 형제를 한미약품 경영에서 배제했는데 송 회장도 지난해 7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가능한 다음 달 주총 전까지 전문경영인을 발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B씨는 “최고 실적이긴 하지만 지난해 한미약품은 매출증가율이 낮았다”며 “한미약품이 주주들과 국민들 신뢰를 얻으려면 그동안 밝혀왔던 전문경영인 선임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조직 정비도 시급하다. 지난해 한미약품그룹은 오너일가는 물론 임직원들도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등 경영권 분쟁 몸살을 앓았다. 이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업무에 올인할 수 있는 조직문화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C씨는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된 한미약품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데 그동안 강조해왔던 사안을 실천만 하면 된다”며 “우수 의약품 제조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