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압박 원인 무역 불균형”
“美 방산 강화 움직임 활용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간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분담금 카드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주한미군을 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갈 가능성은 낮단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1기 당시 사례를 참고하고, 대미 투자, 수입 확대 등 경제적 당근책을 활용해 방위비 압박에 대응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의 방위산업 강화 움직임에 발맞춰 우리 정부, 기업이 조선업 분야에서 대미 협력에 적극 나서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단 진단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신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 하에 우리나라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요구할 조짐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우리나라를 ‘현금인출기’로 빗대며 “내가 백악관에 있었다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했을 것”이라고 언급, 집권시 방위비 압박에 나설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바이든 정부와 2026년 부터 향후 5년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했다. 내년엔 전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을 지불하고 이후엔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키로 했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대통령 권한만으로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동맹국에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 보다는 동맹국이 자립토록 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주한미군 또한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방위비 폭탄이 엄포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단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00억 달러(약 14조5000억원)은 내년 방위비 분담금의 9배가 넘는 규모다.
이는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액수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이 정도로 압박에 나설 확률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거보다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에 나설 개연성이 충분하단 분석이다.
통일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양국이 부담 중인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해 한국이 더 많은 부분을 감당토록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바이든 행정부와 합의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간 문제일 뿐 트럼프 1기 때처럼 이번에도 방위비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한 면을 갖고 있어 요구할 방위비 정도는 가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트럼프 1기 때 우리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걸 그대로 주지 않고 잘 대응했다”며 “당시 사례를 잘 연구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며 우리나라에 방위비 분담 비용을 5배 가량 늘릴 것을 요구했고 이후 한미간 재협상이 이어졌다. 정부는 평택 미군기지 방문 등 설득 과정을 통해 요구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보다 방위비 압박이 더 거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 흑자 흐름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고 방위비를 적절한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 감축, 철군까지 단행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관측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무역수지 적자국이고, 이걸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게 방위비 부담을 늘리려는 가장 큰 이유”라며 “우리 정부는 수입을 늘리거나 방위비를 올려주는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역수지를 나몰라라 하면 압력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양한 협상안을 제시해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대미 기업투자가 방안으로 거론된다. 우리 기업들은 바이든 정부 기간 미국에 생산공장 건립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군사력 재건을 위해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국내 조선 업체와 협력해 미국 해군 조선업 및 함정 유지 보수 등에 대해 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단 조언이다.
강 교수는 “조선 산업에 있어 한국과 미국간 역할 분담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면서 방위비 압박을 줄일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며 “방위비, 무역수지, 조선 산업 협력을 서로가 윈윈할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탄핵 정국으로 정부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한미간 물밑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양국 접촉 채널 활성화가 시급하단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