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입 2000만t 넘긴 미국산 원유···트럼프 2기에 수입량↑ 전망
美 석유·가스 생산 증가→가격 하락 안정화
석유제품 수요 올라 정제마진 오를 것 전망
"단기적 손실 발생·관세 정책 탓에 큰 효과 못 본다" 의견도
[시사저널e=시사저널e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공약 이행을 시사하면서 미국 내 시추 확대로 석유와 가스 생산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방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에 따라 긍정적·부정적 요소가 혼재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급 과잉 가능성에 정제마진이 축소될 것이란 의견과 규제 완화에 따른 수요 증대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모두 나온다.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한 원유 1억3700만톤(t) 가운데 15.7%가 미국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산 원유 수입량(2151만t)은 사우디아라비아(4789만t)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 중 두바이유가 70%를 웃돌 정도로 중동산 원유의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정책이 가시화하면서 미국발 석유·가스의 생산과 수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물가를 낮추고 전략비축유를 다시 가득 채우며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할 것”이라며 “우리 발밑의 ‘액체 금’(석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가 미국산 석유 수출을 위해 통상 압력을 가할 가능성에 국내 정유사들이 선제적으로 대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산 원유 수입량 비중은 2016년 0.23%에서 2019년 12.9%까지 증가했다.
◇ 미국의 증산, 국내 정유업계엔 기회?
원유 시추를 하지 않는 국내 정유사들은 저렴한 원유를 사들여 정제한 뒤 제품으로 판매하는 ‘정제마진’에 수익이 좌우된다. 정유사들이 중동산 원유를 선호하는 것은 ‘총비용’과 ‘정제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를 비롯한 원유 가격은 중동유보다 낮은 가격에 책정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가 더 멀어 운송 비용 등이 중동산보다 더 비싸다.
게다가 국내 정유사들의 정유 설비는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다. 미국산 원유는 주로 경질유, 중동산 원유는 중질유다. 미국산 경질유를 사용하면 추가 혼합비용이 발생하거나, 생산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유 생산량을 늘린다면 미국산 원유가 가격적 측면서도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 업계에선 미국 내 석유 증산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원유 가격이 하향 안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 증산을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국제유가는 나흘째 하락 중이다. 22일(현지시간)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0.39달러(0.51%) 하락한 배럴당 75.4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또한 미국의 화석연료 소비 촉진 정책에 따라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내 석유 수요가 증가해 에너지 산업 규모가 커지게 되면 국제 에너지 시장도 덩달아 활성화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하락, 석유제품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 증가로 정제마진이 상승하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초반에도 유가 하락에 따라 정제마진이 개선된 적이 있다”면서 “현재 손익분기점인 4~5달러선에서 정제마진이 횡보하고 있는데, 단기적으로 반등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 “정제마진 리스크 더 크다” 지적도
반면 일각선 유가 하락으로 인한 정제마진 리스크가 더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기적으로는 비싸게 산 원유를 싸게 팔아야 해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규제 완화가 반대로 정유사들의 생산비를 줄이는 역할을 해 정제 제품의 공급 과잉에 따른 마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원유 정제에서 판매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데 국제유가가 지속 하락하면 그대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면서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동시에 정제마진도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원유 수요를 둔화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관세정책에 따라 무역 갈등이 재점화한다면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해 정제마진이 축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트럼프 1기 때 발생한 ‘미·중 무역분쟁’ 당시 전 세계적인 석유 제품 수요가 위축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정유업계는 트럼프 정부 정책이 가져올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화석연료 부활을 이야기하는 미 정부와 동시에 반대급부일 수 있는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 지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경제성 확보를 위한 보다 다양한 원유를 도입하는 등 다방면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