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정상화 이룬 HMM, 해진공 관리체계 명분 사라져
지난해 챙긴 배당금만 1383억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4년 전 산업은행은 국적 선사인 HMM의 지분을 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보유하는 지분 개편안을 제시했다. HMM 인수합병(M&A) 여건이 조성될 때를 대비해 유관기관인 해진공이 관리·감독을 함께 한다는 방안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2년 9월 강석훈 산은 회장은 “HMM은 정상 기업이 됐기 때문에 조속히 매각해야 한다”며 매각 추진론에 군불을 뗐다. HMM은 코로나19 기간 업황 호조로 경영 정상화를 이뤘고, 매물로 나왔다. 산은 관리체계로 들어가기 직전인 2015년 HMM의 부채비율은 2500%에 달했으나 2022년에는 25%로 크게 줄었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3년 7월, 산은과 해진공 지분에 대한 매각 절차가 시작됐다. 가장 높은 몸값을 받을 시기에 산은과 해진공은 유달리 신중했다. 하림과 동원, LX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도 강 회장은 “적격 인수자가 없으면 팔지 않겠다”며 매각 유찰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출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림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해진공은 “팔더라도 일정 지분은 잡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식의 입장을 밝혔다. HMM이 유일한 국적선사인 만큼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지분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게 해진공 측 변이다. 매각에 있어 ‘찬물 끼얹기’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당시 해진공 측은 주주 간 계약에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일정 기간 지분 매각 금지 등의 조항을 담고자 했다.
결국, 매각은 불발됐다. 당시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진공이 주요 주주로 남아 ‘감 내놔라 배 내놔라’할 텐데 어느 기업이 인수하고 싶겠나”며 “인수 매력이 굉장히 떨어진 셈”이라고 했다.
그 사이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은 더 늘었다. HMM은 꾸준히 산은과 해진공에 주식가치 제고 등을 이유로 영구 전환사채(CB)에 대한 조기 상환 청구권을 행사했지만, 채권단 측은 줄곧 거부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의 HMM 지분율 총합은 67%를 넘어섰다. 올해 잔여 사모 전환사채 전량을 이들이 주식으로 받아간다면 지분율은 약 72%에 이르게 된다.
지분율이 증가한 만큼 해진공이 받아가는 배당금도 많아졌다. 지난해 해진공이 HMM으로부터 수취한 배당금만 1383억원에 이른다.
일각선 “HMM을 매각하면 해진공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에 해진공이 붙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산은은 HMM 매각을 통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상승을 노릴 수 있지만, 해진공은 HMM을 매각하면 덩치가 줄고 배당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경영 정상화가 된 HMM을 관리 감독할 명분이 사라진 지금, 해진공은 HMM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글로벌 해운동맹이 재편되고 주요 선사들이 선대규모를 늘리며 ‘치킨게임’에 나서는 상황서 경영 효율성 강화를 위해선 민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영권은 놓지 못하겠다는 해진공의 태도는 향후 HMM 재매각 시 기업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