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개특위 파행 운영, 특위는 원론적 입장 밝혀···병협 특위 참여 중단, 의료계 ‘처단’에 격노
시민단체 “의료개혁은 국민 의제”···의정갈등도 당분간 악화 전망, 레지던트 지원 저조 예상
의료계는 의대 입시 중단 주장, “환자 위한 것”···학부모 “입시 변경 시 사회적 혼란 크다”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최근 계엄사태로 인해 정부가 추진해왔던 의료개혁이 불투명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내년 의대 입시는 국민들과 의료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밤과 4일 새벽 발생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사태 여파로 현 정부가 핵심과제로 추진했던 의료개혁이 당초 예정대로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실제 의료개혁 실행방안을 논의해왔던 사회적 협의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전날 예정됐던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 개최를 연기했다. 이날로 일정이 결정된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는 서면 심의로 대체키로 했다. 

이와 관련, 의개특위는 이날 “지역·필수 의료를 살리는 것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과제이므로 의료계와 소통하면서 개혁방안을 마련해 가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노연홍 특위 위원장은 “향후 특위 논의는 각계 의견을 충분히 감안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동안 의개특위에 참여해왔던 대한병원협회가 이날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병협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폭력 행태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존중받고 합리적 논의가 가능해질 때까지 의개특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병협은 3일 밤 계엄선포 후 발표된 포고령에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병협은 “전공의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처단’ 표현을 쓴 데 대해 항의한다”며 “국민건강을 위해 살아온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인 명예와 자존감에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실제 계엄사령부가 의료인에게 48시간 내 복귀를 지시하면서 위반자를 계엄법에 따라 처단하겠다는 내용의 발표는 의료계에 충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A씨는 “10여개월 진행된 의정갈등으로 의료계가 예민한 상황에서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발표는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쳤다”며 “처단 표현의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하지만 이번 계엄사태와 별도로 의료개혁은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 입장으로 파악된다. 시민단체 관계자 B씨는 “국민들도 공감하는 의료개혁에 필요한 정책이 현재 논의되는 단계”라며 “이제 의료개혁은 정권이 아닌 국민들 의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B씨는 “의료개혁은 계엄사태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갈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미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자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인 전공의 모집에서 수치로 확인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할 전공의 6950명 모집을 전날 공고했다. 모집 대상은 인턴 3356명, 1년 차 레지던트 3594명이다. 1년 차 레지던트의 경우 9일 원서 접수하고 19일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인턴은 내년 1월 22일과 23일 원서를 받아 같은 달 31일 합격자를 발표한다.

의료계는 이번 모집에 지원할 전공의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시국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상이 힘들지만 최소한 9일 마감하는 레지던트 모집에서는 계엄사태 여파가 구체적으로 확인될 것”이라며 “의정갈등은 당분간 악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의료개혁 추진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급한 현안은 현재 진행되는 의대 입시에 계엄사태가 영향을 주느냐 여부로 요약된다. 교육계에 따르면 6일에는 수능 성적이 통지되고 같은 날 중대를 시작으로 오는 13일까지 의대 수시 합격자가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2025년 전체 의대 모집 인원 4610명 중 수시전형으로 3118명 합격자가 결정된다. 정시의 경우 원서 접수는 31일부터 내년 1월 3일 사이 진행된다. 최초 합격 발표는 내년 2월 7일, 충원 합격 통보 마감일은 2월 19일로 예정된 상태다.

이에 의료계는 현재 진행 중인 의대 입시를 중단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입시 중단이 사회적 혼란을 발생시킬 가능성은 있지만 대책 없이 정원을 늘리면 의대 교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논리다. 의료계 관계자 D씨는 “환자 피해를 막고 의료와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육지책은 의대 입시를 중단하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계엄사태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의대 입시까지 중단될 경우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는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의료계 주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의대 합격자가 발표된 후 증원 규모를 변경할 경우 탈락자 소송 제기가 예상돼 혼란이 급속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 B씨는 “의사들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지금까지 의사들 행태는 대부분 용서됐지만 전 사회적 문제인 입시를 뒤엎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자녀를 둔 학부모 E씨는 “주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입시안 확정 당시에는 무엇을 하다가 왜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결국 최근 계엄사태로 인해 정부가 추진해왔던 의료개혁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확실한 상황으로 분석된다. 현재 진행 중인 내년 의대 입시에 의료계 주장이 반영될지 기존 방안이 유지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