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에 전기차 포비아 확산···당국, 대응책 마련 속도
배터리 실명제 제도화 관심···“제조사 경각심 효과, 과충전 등 운용대책 우선”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전기차 화재에 대한 국민적 공포감이 커지면서 배터리 실명제를 제도화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제조사가 배터리 안전을 좀 더 신경쓰고, 소비자 또한 전기차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단 분석에 정부 내에서도 추진 동력을 받고 있다. 

다만, 근본 문제는 배터리 운용에 있기에 근본 대책이 될 순 없단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 실명제보단 지하주차장 등 폐쇄 공간에서의 충전, 과충전 등에 대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게 우선이란 조언이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워둔 전기자동차에서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이달 1일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차량 140여대가 전소되거나 열손, 그을음 피해를 입으면서 전기차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실제 일부 장소에선 전기차 출입을 제한하고 나섰다.

전기차량이 급증하면서 화재 사고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당국 추산 국내 전기차 등록대수는 첫 집계를 시작한 2017년 2만5108대에서 올해 6월 기준 60만6610대로 크게 늘어났다. 전기차 화재 발생도 2017년 1건에서 올해(5월 기준) 27건으로 증가했다. 

전기차 화재가 크게 늘어났지만, 기존 내연기관자동차보다 화재가 잦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해 차량 1만대당 화재건수는 내연차가 1.47건인 반면 전기차는 1.32건이었다. 다만, 화재시 피해 규모는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더 크고, 소비자 불안이 팽배하단 점을 감안했을 때 대책이 시급하단 지적이 나온다.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오전 6시 15분께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40여대가 불에 탔고, 100여대가 열손 및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 사진=연합뉴스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오전 6시 15분께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40여대가 불에 탔고, 100여대가 열손 및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당국도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자동차 업계, 전기차 전문가 등과 긴급좌담회를 진행한데 이어, 이날 환경부, 국토교통부, 산업부, 소방청 등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전기차 포비아가 범정부적인 문제란 인식 하에 안전상태 점검 및 화재 종합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 안전 대책을 주제로 논의를 진행했으며 구체적 내용은 비공개 원칙이라 밝히기 어렵다”며 “오늘 논의한 안건을 토대로 내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국무조정실을 총괄조직으로 격상해 전기차 안전 관련 대응 방안을 마련한단 계획이다. 

전기차 화재 안전 관련 방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 내에선 배터리 실명제를 주의깊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차에 주로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온도가 1000도 가까이 오르지만, 진화가 쉽지 않단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국토부를 중심으로 전기차에 탑재한 배터리 제조사와 유형 정보를 공개토록 관련 시행령,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다음달 내놓을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에 배터리 실명제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는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해도 배터리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단 지적에서 나온 대책이다. 

해외에서도 배터리 실명제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배터리 실명제를 시행하기로 했고, 미국도 일부주에서 배터리 정보공개 의무화 움직임이 있다. 다만, 배터리 실명제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단 의견도 있다. 전기차 화재의 근본 대책이 되긴 어렵단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실명제를 한다고 배터리 화재가 줄어들지 않는다. 배터리 실명제를 하잔 기저엔 중국산 배터리가 불안하단 인식이 깔려있는데 우리나라 배터리가 중국산보다 안전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어떤 배터리가 좋은지 알지 못한다. 정부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주차장 등 폐쇄 공간에서 주차, 충전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전기차 화재 방지를 위한 근본 방안이란 진단이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실명제를 하면 알권리 측면에서 안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제작사가 좀 더 배터리 제작에 신경을 쓸 것이기에 선순환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건 배터리 충전을 90% 미만으로 하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다음달 말까지 준칙 개정을 통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다만, 이 또한 90% 이하 충전 여부 확인 등에 대한 방안 마련은 숙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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